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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독백 통해 지나친 슬픔 포착…류성훈 시집 ‘산 위의 미술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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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류성훈 시인의 세번째 시집 ‘산 위의 미술관’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첫번째 시집 ‘보이저 1호에게'(파란, 2020)와 두번째 시집 ‘라디오미르'(파란, 2023)에 이어 2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밀도 높게 응축된 정동과 감각으로 현재의 순간들을 담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이 시집은 오롯이 현재의 감각들로 가득차 있다.

현재에 단단하게 발을 디딘 류성훈의 화자는 읊조리는 듯한 독백을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친 슬픔과 공허의 감각을 포착해낸다.

“죽어가는 아들 옆에서/ 아비는 삽을 들고 서 있다/ 한때 함께 그림 속에서 웃던/ 우리는 그곳에 머물 수 없었지만// 괜찮아 세상엔 슬픔 이상 슬픔을/ 갖다 묻는 일이 필요하니까/ 누군가를 보내고 돌아올 때마다/ 남은 삶의 머리 위에 새 돌을 올리곤/ 매번 마지막일 거라고 믿으며// 내일은 좋겠지, 내년엔 좋겠지/ 다음 생엔 더 좋겠지만/ 아무도 내일을 갖고 있지 않아/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정작 한 마디도 못했다” (32쪽, ‘산 위의 미술관’ 中 )

류성훈의 시는 화자의 혼잣말을 통해 연극의 독백이나 방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시편들을 살펴보면 누군가의 속마음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을 때처럼 예민하고 섬세한 정동을 느낄 수 있다.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인물들, 단정할 수 없는 감정들, 수습되지 않는 기억들이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이 시집은 오히려 더 날것의 현실에 가까워진다. 이 시집에서 말하는 날것의 현실은 삶의 회복이나 성장과 거리가 있다.

화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 앞에서 원인을 묻지 않는다. 대신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마치 몸안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듯, 더 깊은 곳까지 가닿는다.

“나눠야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눌 이유가 없는 시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추워지는 그때/꽉 찬 냉장고에 먹을 게 없듯/ 너와도 이별하고 나와도 이별, 애초/ 만난 적도 없기로 하면//씻어도 씻어도/ 씻기는 몸뚱이/ 그래도 귀엽게는 늙고 싶어// 포트는 있지만 커피가 없고/ 보일러는 있지만 가스가 없고/ 그릇은 있는데 김치가 없고/ 현재는 있지만 그 속에 우리가 없고/ 삶은 있지만 내가 없는 곳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다” (53~54쪽, ‘아직’ 中 )

시인은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모든 시, 문학, 나아가 모든 예술은 일종의 ‘독백’이라고 생각한다”며 “시에서는 주체와 타자가 있을 뿐 관객과 배우처럼 역할이 약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엿듣는 타자’로서 존재하며 그 의지의 강약이 관계와 인연을 만들어나간다. 그런 차원에서, 주체들과 타자들의 독백이 무분별하게 뒤엉켜 있다면 주취자의 헛소리가 될 것이고 모종의 사유와 잘 짜인 인위로 직조된다면 그것을 시라고 부를 수 있을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911_0003325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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