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둣빛 여름이 한국에 드디어 당도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해 ‘밀레니얼 핑크’로 불리는 밝은 파스텔톤의 분홍색을 밀어내버린, 이 ‘브랫 그린’은 이미 지난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휩쓸었다.
작년 6월 발매된 영국 팝스타 찰리 xcx(Charli xcx)의 정규 6집 ‘브랫(BRAT)’이 ‘브랫 그린’으로, 그 해 전 세계 여름을 지배하며 ‘브랫 서머(brat summer)’ 신드롬을 일으켰다.
음악계를 넘어 정치계도 뒤흔든 문구였다. 작년 미국 대선 당시 카멀라 해리스 전 민주당 대선 후보를 ‘밈통령’ 주인공으로 만든 것도 찰리 xcx와 ‘브랫’이었다.
단순하게 브랫이라는 글자만 품은 해당 음반의 커버색 라임 그린은 그 해의 컬러가 됐다.
찰리 xcx가 지난 15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광장에서 열린 복합 문화 축제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5(OUF 2025)’의 첫째 날 헤드라이너로 나서 연둣빛 브랫 서머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했다.
‘브랫 그린’은 밀레니얼 핑크의 팬시한 단정함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고발하는 일종의 솔직함이다. ‘버릇없는 새끼’라는 원뜻을 지닌 브랫은 찰리 xcx를 만나 자유롭고 쿨한 여성이 추가됐다.
2017년 ‘2017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후 8년 만에 내한한 찰리 xcx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끈적끈적한 연둣빛 여름의 색을 열대야 속에 흩뿌렸다.
공연시간은 약 60분에 불과했지만 무려 18곡으로 세트리스트를 알차게 채웠고, 공연장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이들의 해방 공간이 됐다.
찰리 xcx는 ‘본 더치(Von dutch)’ ‘언락 잇’ 등을 들려주며 특별한 멘트 없이 반항적인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특히 챌린지 열풍을 일으킨 ‘애플’ 순서에선, 모든 이들이 춤을 춰 현장 모든 곳이 공연장이 됐다.
막판 ‘심패시 이즈 어 나이프(Sympathy is a knife)’ ‘게스’를 거쳐 ‘아이 러브 잇(I Love It)’으로 가는 과정은 무아지경이었다. 여름의 무더위는 그렇게 몽롱한 황홀경으로 비화했다. 내내 브랫 같던 태도로 우리를 흥분시킨 그녀는 막판에 깍듯했다. 허리를 숙여 90도로 인사를 한 뒤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래 저항적인 태도는 이 못난 세상을 향한 것이다. 우리끼리는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려야 한다. 현장엔 ‘브랫 서머’를 온 몸으로 구현한, 맵시가 넘치는 의상을 입은 멋진 여성들로 가득했다. 예상치 못한 아이템도 하나 등장했는데 그건, 대파봉. K팝 보이그룹 ‘엔시티(NCT)’의 유닛 ‘웨이션브이’의 구(舊) 응원봉 별칭인데 이 역시 형광 연둣빛이라, 찰리 XCX의 브랫 콘서트에 기가 막힌 맞춤형이 됐다.
찰리 xcx는 지난 10년간 인디와 메이저 신을 넘나들며 아방가르드 팝·일렉트로닉 음악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팝 음악에 대한 진보적인 접근 방식으로 마니아 층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다 ‘브랫’을 통해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이 앨범으로 올해 ‘그래미 어워즈’ 3관왕, ‘브릿 어워즈’ 5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굵직한 시상식과 메이저 음악 신의 인정을 받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이전과 같았다. 특히 콘서트는 찰리 xcx의 형식과 내용이 여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걸 증거하는 자리가 됐다.
늦게 당도한 ‘브랫 서머’가 아쉽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이날 공연이 ‘브랫’ 투어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브랫 신드롬의 종착지가 한국인 셈인데, 이를 감당할 만한 태도가 관객들에게 내재돼 있었다. 스크린엔 “(브랫 서머를) 끝나지 않게 해달라”는 문구가 떴고, 그렇게 작별은 작별이 아닌 각별해졌다.
한국에서 투어에 마침표를 찍은 찰리 xcx는 이제 영화로 스펙트럼을 넓힌다. 소셜 미디어에 한국 공연 사진과 함께 곧 개봉하는 영화 제작사 A24와 협업 프로젝트 ‘더 모멘트(The Moment)’의 예고편이 담긴 짧은 영상을 공유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찰리 xcx가 구상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매력적인 비주얼 요소도 무기인 찰리 xcx는 ‘더 모멘트’ 외에도 다양한 영화 작업을 한다. 일본 공포 영화 거장 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주연과 제작을 맡는다. 올리비아 와일드, 쿠퍼 호프먼과 함께 에로틱 스릴러 영화 ‘아이 원트 유어 섹스(I Want Your Sex)’에도 출연한다.
지난달 19일엔 영국 런던 해크니 타운 홀에서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국 밴드 ‘더(The) 1975’의 드러머 조지 다니엘과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지난 2023년 약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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