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쏟아지는 인기영상 모아보기 🔥

게임인 줄 알았는데 덫에 걸렸다…연극 ‘트랩'[이예슬의 쇼믈리에] 5

AD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실제 범죄를 저지른 피고처럼 연기해야 할까요?” (트랍스)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죄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초른)

섬유회사 판매 총책 트랍스는 출장길에 자동차가 고장나 우연히 시골마을의 퇴직 판사 집에서 묵게 된다. 공짜로 먹이고 재워주겠노라는 집주인은 트랍스에게 검사·변호사·사형집행관으로 일했던 이웃 노인들과 모의재판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처음엔 단순한 게임으로 생각했던 트랍스가 자신의 죄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연극 ‘트랩’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스위스 출신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가 원작이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트랍스’라는 이름은 ‘트랩’, ‘덫’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검사인 초른은 독일어로 ‘분노’, 변호사인 쿰머는 ‘걱정’, 사형집행관 필레는 ‘(고기)덩어리’를 의미한다. 연극은 한 시간 반에 걸쳐 “범죄 같은 건 저지른 게 없다”고 자신만만했던 트랍스가 노회한 노인들의 덫에 걸려드는 과정을 그린다.

퇴직 후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노인들은 모의재판 놀이를 할 때만큼은 활기가 돈다.

“주로 우리는 역사상 유명한 재판들을 논한다오. 소크라테스, 예수, 잔다르크, 드레퓌스 재판 등등. 한번은 프리드리히 대제가 무능력자로 판결을 받기도 했소…바로 그저께 선거 연설을 하러 온 한 국회의원은 공갈협박죄로 14년 형을 선고받았소.”(집주인)

노인들은 겉 보기엔 허술하기 그지 없다. 법복을 입었지만 안에 입은 옷은 잠옷이고, 양말은 짝이 맞지 않는 데다 머리엔 까치집을 지었다. 하지만 가상 법정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다.

‘털어서 먼지 없는 사람 없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탈탈 털린 트랍스는 어느새 승진을 위해 상사 기각스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기각스를 죽인 살인범이 되고 만다. 놀이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이 재판이 트랍스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사뭇 놀랍다.

노인들이 일부러 트랍스에게 덫을 놓은 것인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트랍스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인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달렸다.

마지막 한 가지. 등장인물은 가정관리사인 시모네 마저도 이름이 있지만 판사 역할의 집주인만이 이름이 없다.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전지전능한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공연은 20일까지.

★공연 페어링 : 샤토 마고

트랍스가 자신도 잊어버린 죄를 털어놓고, 없는 죄마저 지어내 만드는 데에는 산해진미와 고급 와인이 한 몫 한다. 빨간 카펫이 깔린 공연장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식탁이 놓여있다. 등장인물들은 생선, 시칠리아 새우, 뉴질랜드 최고급 송아지 구이, 칠레산 영계요리 등을 먹는다. 먹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실제로 대본에 나오는 요리를 먹으면서, 와인으로 보이는 음료를 마시면서 연기한다는 게 이 연극의 특이한 지점이다.

연극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트랍스가 큰 비밀을 털어놓을 때마다, 검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때마다 비싼 와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극 초반 해산물 요리에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토착 품종인 ‘그릴로’로 만든 화이트와인이 곁들여진다. 기각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발설했을 땐 25년 묵은 샤토 피숑 롱빌이, 기각스의 부인과 불건전한 관계에 있다는 말을 하기 직전엔 33년 된 샤토 파비를, 트랍스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털어놓기를 종용하면서는 무려 80년 짜리 샤토 마고를 내놓는다.

샤토 마고는 프랑스 보르도 5대 샤토 중 하나에 속한다. 그랑크뤼 클라세 5개 등급 중 1등급 와인으로, 이 등급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보르도 와인의 서열을 매기라는 나폴레옹 3세이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다.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샤토 마고를 필부필부가 마시기엔 부담스럽다.

등장인물들이 호화롭게 먹고 마시는 ‘트랩’을 본 후 와인 생각이 간절하다면 샤토 마고 까지는 못 마시더라도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따는 것은 어떨까? 보르도는 비가 잦고 습도가 높은 편이다. 강우량에 따라 포도의 품질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단일 품종으로 양조하기보다는 몇 종류의 포도를 섞는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중심으로 카베르네 프랑, 프티 베르도 등이 소량 들어간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004_0002909302
AD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