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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이게 예술이 아니면 ‘힙노시스:LP커버의 전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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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역대 최고 앨범은 뭘까.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바나의 ‘네버마인드’를 고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빈 게이의 ‘왓츠 고잉 온’을 말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오아시스의 ‘모닝글로리’를, 또 다른 누군가는 라디오헤드의 ‘키드 A’를 선택할 수도 있다. 팝 마니아라면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를 먼저 얘기할 것이고, 힙합을 주로 듣는다면 칸예 웨스트의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티드 판타지’를 고를 것이다. 음악은 너무 많고 취향은 천차만별. 모두가 수긍할 만한 역대 최고 리스트를 추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 역대 최고 LP 커버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의견이 모아질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앨범 커버를 언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핑크플로이드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이 커버엔 딱 하나만 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이미지. 가수 얼굴도, 이름도, 어떤 설명도 없다. 이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앨범 커버는 어떻게 탄생했나. 그리고 누가 만들었나. 다큐멘터리 영화 ‘힙노시스:LP커버의 전설'(5월1일 공개)은 이 얘기를 들려준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주연한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으로 국내 관객에게 낯설지 않은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69) 감독은 영화감독이기 전에 사진 작가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코르빈 감독은 U2·롤링스톤즈·너바나·메탈리카 등과 함께 일하며 사진을 찍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앨범 커버 역시 그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기 때문에 코르빈 감독의 경력이 ‘힙노시스:LP커버의 전설’로 이어진 건 자연스러웠다. 힙노시스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린 런던의 디자인 스튜디오. 코르빈 감독은 이들이 만든 핑크플로이드의 ‘아톰 하트 마더’ 앨범 커버를 봤을 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젖소 한 마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로 그 커버 말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 앨범 커버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했죠. 그러다가 힙노시스를 알게 된 겁니다. 힙노시스는 독보적이었고, 앨범 커버 디자인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놨어요.” 이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힙노시스를 만든 듀오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이 처음 만나 마약을 해대던 1964년 영국 케임브리지 어느 방구석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힙노시스:LP커버의 전설’은 러닝 타임이 100분 밖에 되지 않지만, 한 시대를 압축해놓은 것만 같은 밀도를 보여준다. 힙노시스가 결성되고 해체되는 이야기부터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의 성격과 역할 분담 같은 세부적인 내용, 포토샵 같은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 이들이 만들어낸 전설의 커버들과 그것들이 만들어진 과정, 1970년대 영국 록 음악계 흐름과 당시 시대 분위기, 음악 산업의 폭발적 발전과 슈퍼 밴드들의 뒷이야기 등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폴 매카트니, 핑크플로이드 멤버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레드 제플린 멤버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 제네시스의 피터 가브리엘, 10cc의 그레이엄 굴드먼, 섹스피스톨즈 글렌 매들록 등 전설의 뮤지션 등이 나와 힙노시스와 그들이 만든 앨범 커버에 관해 얘기한다. 게다가 이들의 히트곡이 상영 시간 내내 흐른다. 꼭 록 음악 마니아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진수성찬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창작을 업으로 하거나 앞으로 창작으로 돈을 벌고 싶은 이들에게 ‘힙노시스:LP커버의 전설’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교보재가 돼 줄 것이다. 이 작품은 힙노시스의 혁신이 스톰의 천재적 감각 뿐만 아니라 오브리의 현실 감각과 실행력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라는 걸 놓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치 않고 행동에 옮기는 그들의 집요한 추진력과 도무지 쉴 생각을 하지 않고 일하는 그들의 성실함 역시 혁신의 과정이라는 걸 짚어낸다. 준비한 게 뜻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때 보여주는 그들의 유연한 사고, 타협을 모르고 밀어 붙이는 스톰과 타협 역시 좋은 예술을 만들어내 위한 방법 중 하나라는 걸 이해한 오브리의 조화 역시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피터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무례하고 짓궂고 까다로웠지만 한 가지만은 믿을 수 있었어요. 놀라운 커버를 만들어낼 거라고요.” 그리고 닉 메이슨은 말한다. “그들은 탁월한 아이디어와 짜증 날 정도로 높은 기준의 대명사였죠.”


힙노시스는 앨범 커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사람 몸에 불을 붙였고, 35㎏ 무게 조각상을 들고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전에 없던 걸 만들어내기 위해 자르고 오리고 붙이고 더하고 빼기를 반복했으며, 커버 하나에 그 모든 의미를 담으려고도 했고 어떤 의미도 없기를 바랐다. 1968년에 만들어진 힙노시스는 1984년에 해체됐다. 힙노시스가 만든 앨범 커버보다는 MTV에서 쉬지 않고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대세가 됐던 시기였다.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결국 돈 문제였다. 오브리는 살아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지만, 2013년 세상을 떠난 스톰은 그들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지는 걸 보지 못했다. 이제는 누구도 앨범 커버를 유심히 보지 않는다. 지금은 스트리밍의 시대이고, 플레이 리스트의 시대이니까. 그러나 힙노시스의 커버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2020년대 힙스터들은 새삼스레 LP를 사모으며 1970년대 힙스터 중 힙스터였던 힙노시스를 알게 모르게 지지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0502_000272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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