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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완벽주의’ 조용필 “내 음악 지금도 ‘한심’…욕망이 너무 많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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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집부터 시작해서 20집이죠. 앨범으로서는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또 새로운 좋은 곡이 있으면 계속 낼 겁니다.”

올해 데뷔 56주년을 맞은 ‘가왕(歌王)’ 조용필(74)은 오래되고 새롭다. 여전히 왕으로서 지위는 놓지 않는 가운데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앨범이 굿즈로 전락한 시대에 조용필은 앨범이라는 물리적인 것에 집착하기 보다 ‘더 좋은 곡’에 대해 더 고민한다.

22일 오후 6시 음원 플랫폼에 공개한 정규 20집 ’20’이 그 증거다. 조용필이 정규 음반을 내는 건 2013년 정규 19집 ‘헬로(Hello)’ 이후 처음이다. 앞서 2022년 10월과 작년 4월 각각 정규 20집 리드 싱글 ‘로드 투 트웬티(20)-프렐류드’ 1·2를 발매하면서 예열했다.

두 싱글에 실린 ‘세렝게티처럼’ ‘찰나’ ‘필링 오브 유’ ‘라’ 등으로 여전히 젊은 감각을 증명했다. 팝록,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등에 도전했다. 이 곡들이 이번 앨범에 모두 실리고 타이틀곡 ‘그래도 돼’ ‘타이밍(Timing)’ ‘왜’가 추가됐다.

모던 록 ‘그래도 돼’는 마틴 한센, 콘라드 스웰 등이 작곡했고 작사가 임서현이 노랫말을 지었다. ‘모든 이들을 위한 뭉클한 응원가’를 표방한다. 일렉트로닉 팝 록인 ‘타이밍’은 다니엘 무카라, 스티브 다이아몬드 등이 작곡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고 역시 임서현이 작사했다. ‘왜’는 안드레어스 스톤 요한센과 안드레어스 오베르그 등이 작곡을 작사가 서지음이 노랫말을 보탰다.

조용필은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마치 노랫말 속 화자가 된 듯 뛰어난 몰입력으로 곡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번 앨범 총괄 프로듀서로 나선 조용필은 음반에 실린 일곱 곡 중 어느 곡도 홀로 작곡하지 않았다. 외국 작곡가들 위주로 진용을 짰는데, 세계 트렌드를 따르겠다는 일종의 의지다. 다만 ‘필링 오브 유’ 한 곡에만 공동으로 작곡가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작사는 임서현, 서지음 외에 김이나가 각각의 곡을 단독 작사했다. 독단적인 노년의 거물이 아니라 거리두기를 할 줄 아는 장인의 거장이 여기에 있다. 그의 꼼꼼함은 ‘완벽한 완벽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날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20’ 발매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밖에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도 ‘이터널리’, ‘미지의 세계’, ‘위대한 탄생’ 등 조용필 팬클럽 회원들은 자리를 지키며 조용필을 응원했다. 다음은 해박한 지식의 임희윤 음악평론가 그리고 기자들이 조용필과 나눈 일문일답.

-정규 앨범이 무려 11년 만입니다. 2013년 정규 19집 ‘헬로(Hello)’ 이후 처음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신가요?

“근데 그렇게 돼요. 나이 먹으면… 제가 1991년에 TV 출연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어요. ‘콘서트로 하겠다’라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방송을 안 하니까 내봤자 예요. PR이 안 돼서, 홍보가 안 되니까요. (‘헬로’ 선공개곡인 ‘바운스’로 크게 흥행한) 19집은 운이 좋았어요.”

-‘바운스’가 반응이 있을 줄 아셨나요?

“몰랐죠. (음원 공개 전) 음악하는 분들, 평론가 분들에게 미리 들려줬는데 반반 갈렸어요. ‘헬로’하고, ‘바운스’하고요. ‘바운스’ 같은 경우는 원래 통기타로만 했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아서 피아노를 다시 쳤죠. 피아노를 또 바꿨어요. 그러고 나서 발표를 했어요.”

-11년의 긴 침묵을 깨고 2024년 10월 오늘을 발매일로 잡으신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이달 초까지 녹음했어요. 원래 (앨범에 실으려고 한 노래가) 한 곡이 더 있는데 그 곡을 완성시켰어요. 그 곡은 이 앨범에 참여를 못했습니다. 성향이 조금 달라요. 그래서 다음에 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활동이신 줄 알았어요. 앨범 재킷도 뒷모습을 내세우셨고 ‘그래도 돼’ 뮤직비디오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20집으로 ‘마지막 찍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여러 곡이 실린) 앨범으로서는 아마 마지막 앨범이 되지 않을까 해요. 이제 두 곡 내지 몇 곡을 해서 내려고 합니다. 또 약간 미쳐가지고 21집까지 낼지는 모르죠.”

-‘그래도 돼’는 ‘늦어도 돼’ ‘새로운 시작’ ‘자신을 믿어봐’ 같은 응원 메시지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이 곡을 만드시게 된 계기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올 봄이죠.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우승자가 ‘챔피언 세리머니’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순간 패자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카메라 밖에 있는 패자의 모습이요. 물론 속상했겠지만 저 같았으면 ‘다음엔 이길 거야’ ‘힘을 가질 거야’ 같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작사하시는 분(임서현)하고 만나서 이 얘기를 들려줬죠. ‘어떤 사람이든 이런 내 마음이 자기 마음일 수 있다’라는 얘기를 하고 ‘이런 걸 둘러둘러 얘기하지 말고 그냥 직선적으로 얘기하는 가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어요. 당시 전 패자의 팬이었거든요.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순 없어요. 저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마 이 중에서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가요계에서는 선생님이 ‘패자의 감정’에 이입을 할 일은 없을 것 같고요. 평생 지신 적이 없지 않아요.

“아니에요. 곡이 전부 미완성으로 끝나게 되잖아요. ‘내가 만족하다’ 해서 내놓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걸 들어보면 ‘한심하다’ 생각이 듭니다. ‘고치겠다’ 소리는 아니고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자신과의 싸움인 거죠?

“주위에선 ‘이 정도면 됐을 것 같습니다’ 자꾸 그러는데 전 속으로 화가 나고 그렇죠.”

-그러면 만약에 타임머신이 발명이 됩니다. 과거로 갈 수 있어요. ‘그래도 돼’를 과거의 조용필에게 들려줄 수가 있다면 몇 년도에 가시고 싶으신가요?

“1992년 제가 기자회견을 했을 때였어요. ‘꿈’이 나오고 난 다음에 했습니다. 그 때 방송을 너무 많이 했어요. 80년부터 92년 기자회견 전까지 아마 저만큼 TV를 많이 나왔던 사람도 드물 겁니다. ‘계속 이렇게 되면 방송인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게임 프로그램’에 나오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거절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콘서트만 하겠다. TV 안 나오겠다’ 이렇게 선언을 했었죠. 그 후가 문제입니다. 콘서트를 하는데 2년, 3년 지나면서 관객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아니 내가 히트곡이 이렇게 많은데 조용하네…’ 그때 아마 제일 자신에 대해 실망스러웠을 겁니다.”

-‘타이밍’에 들어 있는 추임새는 선생님이 하신 겁니까? 녹음하시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셨을 것 같습니다.

“다 제가 했어요. 보통 한 곡 녹음하는데 최고 많이 걸리는 건 세 시간 정도요. 전에 코러스 잘하는 친구들하고 같이 한번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섞이니까, 제가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같은 곡의 코러스도 다 제가 했어요. ‘고추잠자리’는 여성가수들이 한 줄 알고 계시는데, 제가 한 겁니다.”

-‘왜’는 ‘조용필 절창’을 느껴볼 수 있는 곡입니다.

“그 많은 곡을 냈는데 이 곡만큼 연습을 많이 한 곡은 아마 없었을 것 같습니다. 몇개월을 이 한 곡을 위해서 썼어요. 대신에 가사가 각기 달랐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맞는 가사를 선택해서 한 거예요. 창법이라든지 가성이라든지 또 노래의 전달력이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연습을 많이 했죠.”

-‘왜’는 조용필 씨의 예전 전통가요라든지 민요풍의 감성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환영할 만한 곡이 아닌가 합니다. 동양적인 멜로디도 있고요. 예전에 판소리도 직접 배우고 하셨잖아요. 조상현 명창에게요.

“네 제가 76년, 77년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고 나서 몇 년 쉬었을 때 ‘한오백년’이라는 곡이 TV에서 곡이 나왔는데 그것에 완전히 꽂혔어요. ‘우리나라에도 저런 노래가 있나’ 생각해서 그 노래 LP판을 다른 버전으로 아마 11개가 12개를 사서 연구했어요. 그 곡을 제 스타일로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그 멜로디는 건반 악기로 안 되거든요. 건반 악기로 할 수 있게끔 연습을 하면서 그 때 우리 민요에 대해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판소리도 한번 해보자’ 나름 연습도 했고 공부도 했죠.”

-‘왜’는 후반부에 기타 솔로가 나오면서 변박으로 7박 갔다가 4박으로 갔다가 하는데 흔치 않은 구성이죠. 콘서트 현장에서 이 곡을 들어도 대단할 것 같은데요.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사운드뿐 아니라 조명 연출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곡이라서요. 근데 공연(오는 11월 23·24·30일 그리고 12월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에서 열리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콘서트)에서 이 곡이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아직 결정이 안 됐습니다.”

-‘라’가 이번 앨범 마지막곡인데 가장 파격적인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이 곡을 콘서트에선 그냥 서서 부르시지 않을 거죠? 칼군무가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마이크 잡고 하니까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도 해요. 사운드도 그렇고 제가 나이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생각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데…’ 하면서 하는 거죠.”

-‘왜’는 자기의 목소리로 ‘정면승부’하는 곡인데요. 두려움이 있음에도 ‘내 목소리 하나’만으로 관객이나 팬들에게 증명해 내야 되는 이 곡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곡이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는 연습하면서 판결이 납니다. 연습하면서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 ‘나한테 맞는다 안 맞는다’ 결정이 되거든요. 스마트폰으로도 녹음을 해보고, 또 조그만 스피커로도 들어보고, 큰 스피커로도 들어보고 계속 들어봐서 ‘이건 가능성은 있다’ 해서 선택했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왜’는 가사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결정이 난 후에 본격적으로 창법을 연습했고 과감하게 했습니다.”

-작업하시면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음악은 이런 거다’ 말씀과 함께 ‘음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가수로서 우선 노래하는 걸 좋아해야 되고 또 장르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들어야 되고 계속 배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지금도 창법, 음성 내는 연습과 방법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연구해요. ‘저 가수는 저렇게 했는데 나는 될까’ 그러면서 바로 바로 시험해 보고… 그게 재밌습니다. 그것이 아마 지금까지 하게 된 저의 동기인 것 같고요. 음악은 사실 우리 표현이잖아요.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은 대중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가사도 마찬가지로 이쪽에서 써서 노래를 불렀지만 대중의 것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옛날에는 그걸 잘 모르고 했습니다. ‘음악이 좋으니까 하는 것이지’ 마음으로 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차츰 깨닫게 돼 조금씩 조금씩 디테일하게 연구하는 편입니다. 음악은 삶에 대한 연구이자 어떤 끝없는 도전이죠.”

-최근 선생님 노래는 사랑보다 그 외적인 것을 주제로 많이 삼으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고요. 또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굉장히 많이 들으시고, 후배들의 공연에 화환을 보내주신다거나 화답해 주시는 것도 유명한데 최근엔 어떤 후배들의 곡을 유심히 듣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사랑가를 많이 불렀어요. 너무 많이 불렀기 때문에… 사랑이 뭐 그런 거잖아요. 요즘엔 ‘꿈’ 작사했을 때 마음으로 해요. 그때 비행기 안에서 모 신문사 사설을 읽었어요.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청년들에 대한 사설을 봤습니다. 그것에 대한 가사를 썼죠. 요즘은 제가 쓰지 않지만 작사가분들한테 그렇게 요청을 합니다. (후배들 노래 듣는 건)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AFKN을 거의 매일 듣습니다. 하루종일 음악만 나오기 때문에요. 최신곡부터 시작해서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 옛날 곡까지 계속 시간대로 나오기 때문에 어떤 흐름과 어떤 음악의 변화를 많이 느껴요. 후배가수들에게 꽃다발을 주는 건 더 열심히 할 것 같아서 또 용기가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합니다.”

-이번 앨범 트랙을 보면 응원가가 많더라고요. ‘노래는 대중의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응원가를 듣고 젊은 세대들이 어떤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바라시는 게 있나요?

“옛날 노래를 들어보면 그런 곡들이 있잖아요.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 놓아주는 거… 북돋아주거나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음악들이 있잖아요. 아마 그것의 연장선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아마 저도 해야 된다는, 어떤 저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힘든 과정이 있어야 하나의 것을 완성할 수 있잖아요. 지금 힘들다고 계속 힘들어하면 결국 못합니다. 힘들어도 일단 끝을 내봐야 요만한 것이라도 거기에 대해 나중에 더 발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조건 힘들어도 해야 됩니다.”

-이번 앨범 사운드 측면에서 특별히 공을 들인 부분이 있다면요.

“우선 저는 곡을 선택할 때 사운드를 굉장히 신경 많이 씁니다. 멜로디를 떠받치는 사운드와 또 어떤 음색 이런 걸 굉장히 많이 생각해서 그것이 제 마음에 들면 시작을 합니다. ‘창밖의 여자’ 다음에 ‘단발머리’가 80년도에 나왔습니다. ‘뿅뿅뿅’ 사운드는 제가 세운상가에 가서 전자드럼을 사가지고 스튜디오 가서 튜닝을 해서 친 소리에요. 사운드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온 그룹 출신이라서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창법에서 힘을 덜어내더라도 곡의 분위기에 최대한 맞춰서 담백하게 하시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어떠셨는지요.

“제가 끊임없이 연구한다고 했잖아요. 어떤 노래는 제가 그대로 흉내내고 싶은 곡도 있더라고요. 굉장히 많아요. 저는 그런 창법이 안 되니까요. 저로서는 요만한 틀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 흉내를 한번 내고 싶다 해가지고 그 곡을 듣고 나름 또 많이 연습도 해봤어요. 또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가수들이 굉장히 많아요.”

-조용필 하면 노래 제일 잘하는 사람이고 음색도 가장 좋지 않습니까?

“서양 사람들하고 동양 사람들하고 또 다릅니다. 서양사람은 아무래도 우리보다 커서 그런지 울림이 많습니다. 아직까지도 배울 건 배워야 됩니다.”

-직전 앨범 때는 예전 모습을 다 지워버리고 작업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절제라는 단어를 붙여 놓고 작업을 하셨었다고요. 이번엔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지금은 옛날 조용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나의 상태를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게끔 해야지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믹싱·마스터링을 얼마나 갈아엎으셨고, 엔지니어들을 얼마나 괴롭히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믹싱을 하면 보통 미국 엔지니어랑 16번, 18번 정도를 왔다 갔다 합니다. 거기서 지겨워하죠. 한 달 간, 두 달 간을 붙잡아놓으니까요. 그 사람도 다른 일이 있을 거 아니에요? 계속 여기서 보내서 ‘이거 올리고 이거 내리고’ 또 ‘코러스 이쪽으로 좀 내고’라고 하지만 그 사람도 전문가인데 싫어하겠죠. 그 사람이 결국 한국까지 왔습니다. 스튜디오에 와서 차도 마시고…. 그렇게 좀 짓궂게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인들이 사랑을 받고 성과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하고요. 또 요즘에 100세 시대는 기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앞으로 인생 목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짜 우리나라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도약을 했고 선진국에 들어왔고 거기다가 K-드라마, K-팝, K-푸드가 있죠. 근데 알고 보니까 90년대 말부터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나갔더라고요. 저는 갑자기 방탄소년단(BTS)이 된 건 줄 알았는데요. 그 전부터 우리나라 샤이니라든지 90년대 말부터 2000년도 초까지 굉장히 외국에 어필이 됐더라고요.”

-선생님은 한국 가수 최초로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신 분이시잖아요.

“예. 네 번 출연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K팝 열풍인데 전 좀 늦게 태어나 키가 크고 잘생겼으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하. 장기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조금 더 노래를 할 수 있었으면… 목소리가 됐으면 하는 생각인데 연습을 더 많이 해야 돼요. 연습을 통해서 좀 더 스트롱한 목소리가 나왔으면 합니다.”

-진성, 가성을 오가는 창법이 곡의 몰입도를 높여주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제 곡마다 다르겠지만 창법의 변곡점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가 뭔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불러보고 저렇게도 불러보는 거죠. 그리고 녹음하는 거죠. 거기서 찾는 거죠. 혼자 해요. ‘남이 이렇게 녹음해봐’ 해서는 저는 안 합니다. 제가 녹음해서 들어보고 그 다음에 우리 음악 감독 하고 같이 해서 불러보고 또 들어보고 그때 또 또 바꾸고 이런 식으로 가는 거죠.”

-‘그래도 돼’ 뮤직비디오는 뉴진스랑 작업한 영상 제작 업체 ‘돌고래유괴단’하고 하셨고 이전 ‘필링 오브 유’ 뮤직비디오는 추수 작가와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만드셨어요. 핫한 연출진하고 협업을 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래도 돼’는 아예 맡겨버렸어요. 제가 참견할 게 아닐 것 같아서요. ‘필링 오브 유’는 애니메이션을 제가 좋아하니까요. 옛날에 애니메이션으로 광고(‘맥콜’)도 찍었거든요. 흥미롭다는 생각에 했습니다.”

-음악 외 정말 아무것도 관심이 없으신지요.

“그건 맞습니다. 10년 정도 보면 거의 뭐… 팬데믹 시절엔 다 집에 많이 있었잖아요. 그때는 집 스튜디오, 집 스튜디오만 왔다갔다 했습니다. 집 들어와서도 듣고 적는 게 일입니다. 그냥 그거밖에 모릅니다. 제가 다른 것에 대해선 무식한 편입니다.”

-지난 56년의 음악 생활이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도전이죠. 해보고 싶었던 욕망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결국 다 이루지 못하고 끝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곡은 어떤 곡들이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앨범으로서는 이것이 마지막일 것 같고요. 그래도 저는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그만두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022_000292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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