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비슷한 시기, 같은 제목에, 톱 여배우를 주연으로 무대에 올려 상반기 연극계 최고 화제작으로 떠오른 ‘헤다 가블러’가 각기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LG아트센터)’가 지난 7일 먼저 막을 올렸고, 출연진의 건강 문제로 출항이 늦어진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국립극단)’도 지난 16일 닻을 올렸다.
‘헤다 가블러’는 ‘근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크 입센이 1890년 발간한 희곡이 원작이다. 입센은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독립적인 여성을 그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부유한 장군의 딸 헤다는 학자 테스만과 결혼해 6개월 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지만 결혼 생활은 지루하고 권태롭기만 하다. 그런 헤다 앞에 옛 연인 에일레트(뢰브보르그)가 재기해 나타나고, 그의 성공이 하찮게 여겼던 자신의 동문 테아의 도움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헤다는 질투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원작이 동일한 두 공연은 제목도, 줄거리도 같지만 연출과 무대에 있어선 다르다.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LG아트센터의 ‘헤다 가블러’는 헤다의 집을 거대한 회색 상자처럼 표현한다. 마치 감옥과도 같은 집에는 카라바조의 바쿠스(디오니소스) 액자, 날아가지 못한 채 묶여있는 풍선들이 배치돼 있다.
회색의 벽면은 스크린으로도 활용된다. 라이브캠으로 헤다 역의 이영애를 클로즈업해 그동안 영상매체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의 세밀한 표정 연기와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런 영상 활용은 LG아트센터 ‘헤다 가블러’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이와는 달리 중극장에 ‘헤다 가블러’를 올린 국립극단은 무대를 소파와 의자, 테이블, 조각상 등으로 빼곡히 채웠다. 히피즘이 성행했던 197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무대 역시 이를 고려했다.
인물들의 관계성을 놓치지 않은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헤다 뿐 아니라 등장 인물 전체가 보이도록 극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초연엔 신이 되려 했던 헤다였다면, 이번에는 인간에 가까운 헤다를 보여주기 위한 박정희 예술감독의 ‘선택’이다.
이영애와 이혜영이 그려내는 헤다의 매력도 다르다.
대표적인 미녀 배우로 청순한 매력을 보여왔던 이영애는 존재 자체로 아름다우며, 선망 받는 헤다로 분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속을 알 수 없는 냉정함을 드러내는데, 에일레트의 원고를 난로에 태우며 “네 아이를 태우고 있다”고 읊조릴 때는 섬뜩함이 감돈다.
초연 이후 13년 만에 돌아온 ‘원조 헤다’ 이혜영은 62세라는 나이를 잊게 한다. 극 초반엔 발랄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극이 중반으로 들어서고 갈등을 빚으면서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권총으로 이곳저곳을 겨냥하다 스스로에게 총구를 들이댈 때는 서늘함마저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여성 심리 위주로 그려진 19세기 원작을 다루면서도 이전과 다른 ‘헤다’를 보여주려 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이영애는 “누구나 자신 속에 헤다가 있다”며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욕망이 있고, 표출하지 못한 질투가 많을 수 있다.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가 누구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혜영과 ‘헤다 가블러’를 이끌고 있는 박정희 예술감독은 “21세기에 와서는 여성, 남성이라는 젠더를 초월한 한 존재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고 밝혔다.
LG아트센터는 내달 8일까지, 국립극단은 내달 1일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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