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당합병과 회계부정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시키기 위해 총 18개의 위법을 저질렀으며 이 과정에서 업무상 배임이 있었다고 의심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부회장을 맡았던 당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난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0.35대 1이었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이 회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에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시점과 합병비율 등을 맞췄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시키기 위해 ▲이사회 단계 ▲주주총회 단계 ▲주총 이후 단계 등 총 3단계에 걸쳐 18개의 위법을 저질렀다고 의심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주주들이 누릴 수 있었던 이익 실현 기회를 이 회장이 빼앗았다’는 혐의(업무상 배임)가 성립한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 구조다.
검찰은 우선 미래전략실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전단적으로 결정한 뒤 ‘이사회 개최’를 형식적으로 거치고, 합병의 목적과 경위 등에 관해 허위의 내용을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에 의해 상승추세였으며, 이 회장 등이 제일모직 주가는 고평가된 반면 삼성물산 주가는 저평가된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미전실은 구체적이고 확정적으로 검토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삼성물산 측의 검토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보고서 작성은 회계법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판시했다.
‘주주총회 단계’에서 이 회장 등이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물산 자기주식을 KCC에 전격 매각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부정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투자위험 정보를 은폐하거나 허위로 공표한 혐의 ▲합병과 관련한 허위 정보를 유포한 혐의 ▲인위적 주가부양을 위해 허위 호재를 공표한 혐의 ▲일반주주들을 상대로 부정한 의결권을 확보한 혐의 등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병 이사회 이후 합병 주주총회에 이르기까지 피고인들이 합병 성사를 위해 수립한 계획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의 통상적이고 적법한 대응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합병의 정당화를 위해 허위의 명분과 논리를 구체화했고 주주설명자료 등을 통해 허위로 설명했다는 공소사실은 이 사건 합병의 목적, 결정 주체, 합병 시점의 선택, 합병비율, 시너지 효과 등이 모두 허위 내지 조작되거나 부정성을 띠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있는 것이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총 이후 단계’에서는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부양을 위한 시세조종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통상 시세조종성 주문과는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구체적 매매태양을 살펴보더라도 자기주식 취득의 통상적인 모습에 포섭될 뿐 비정상적인 거래 모습은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며 “시세조종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 부정회계 의혹’ 역시 실체를 부정했다.
2012~2014 회계연도 당시 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를 단독으로 지배했다고 볼 여지가 있어 분식회계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은 로직스가 2012회계연도부터 에피스에 대한 단독지배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바이오젠의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의 행사 가격이나 조건을 기재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이에 따라 로직스가 2014 회계연도 당시 ‘거짓 회계’를 작성했다고 검찰은 의심했지만, 법원은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실질적인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지배력 판단과 관련해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정했다.
결국 부당합병 과정에서 업무상 배임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이사인 이 회장 등 삼성물산 주주들의 사무처리자 지위 및 이 사건 합병의 필요성 및 합병비율 등에 관한 임무 위배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며 “검사의 항소 이유에 관한 주장에 이유가 없다”고도 말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합병비율이 불공정했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진행된 항소심에선 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 입증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로직스가 2015년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분식회계를 일부 인정했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이 회장의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등 혐의 입증에 주력해 왔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만약 피고인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진다면 지배주주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위법과 편법 등을 동원해 자신의 이익이 부합하는 방향으로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 회장에게 1심과 동일하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1심에 이어 항소심 최후진술 과정에서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부당합병’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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