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무대에 못 올라가 우린. 언더스터디잖아. 기다리는 게 우리 일이라고.”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림은 멈추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기다림은 포기도, 희망도 아닌 그저 계속할 수밖에 없는 본능처럼 다가온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고전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메타 코미디 연극이다.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뒤를 비춘다. 허름한 분장실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할 기회만 기다리는 언더스터디 배우 에스터와 벨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더스터디는 메인 배우가 공연에 설 수 없게 됐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다. 이들은 메인 배우를 대체할 수 있도록 늘 대기하고 있지만, 언제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조명이 떨어진다든가, 배우가 갑자기 아프다든가, 아니면 잘릴 수도 있고”
에스터와 밸은 메인 배우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무슨 일’을 상상하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사실 그들도 모르지 않는다. 기회는 쉬이 오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리는 것뿐이란 것을.
원작에서 주인공들은 ‘고도’가 무엇인지도, 언제 오는지도 모른 채 모호한 기다림을 계속한다.
이와 달리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터와 밸은 그들의 출연 여부를 결정할 ‘연출’을 기다린다. 그러나 오지 않는 고도처럼, 연출도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원작의 무거운 분위기와 추상적인 질문은 보다 가볍게 변주됐다.
그러나 예술과 연극, 인생에 대한 질문과 씨름하는 에스터와 밸의 모습을 통해 ‘기다림’이라는 부조리극의 본질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의미? 살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 그냥 기다리는 게 우리 일이야. 다른 생각하지 마. 그게 최선이야”라는 대사에서는 버티며 기다리는 삶의 무게와 무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극은 유쾌하게 흘러가지만, 간절한 꿈을 품은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의 끝도 쓰게 느껴진다.
소품인 구두를 빼앗기면 언더스터디마저 잘릴까 전전긍긍하며 작은 구두에 억지로 발을 욱여넣는 에스터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짠하다.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웃음 속에 스민 쓸쓸함을 쉬이 외면할 수 없을 테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 역으로 출연했던 박근형은 이번 공연에서 에스트라공의 언더스터디 에스터 역을 맡았다.
무대에 설 기회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령의 배우로 분해 밸과 쉴 새 없이 티키타카를 나누며 코믹함을 자아내다가도, 인생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눈빛 하나로 묵직한 존재감을 선사한다.
9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 김병철이 박근형과 함께 에스터를 맡았다.
밸 역에는 이상윤과 그룹 샤이니 출신 최민호가 출연한다.
공연은 다음 달 16일까지 예스24 스테이지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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