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바그너의 음악은 마치 ‘마약’과 같다고 생각해요. 바그너의 음악에 빠지면 하루 종일 바그너 안에서 살아야 하고 꿈에서도 생각나죠. 마치 바그너의 음악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어요.”
1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기자간담회에서 얍 판 츠베덴(64)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바그너 작품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그러면서 바그너를 미술관의 한 작품에 비유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 안으로 끌어들여서 그림의 일부가 되도록 만든다”고 했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향이 내달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국내에서 초연한다. 내달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된다. 공연은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해 오페라 ‘탄호이저’에 이은 두 번째이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은 “지난 몇해동안 꾸준히 쌓아온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제작의 중요한 정점이자 한국 오페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의 오페라 대표작으로, 독일 켈트 신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한다. 아일랜드 공주인 이졸데는 과거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코른웰의 왕 마르케의 조카인 트리스탄과 사랑에 빠지는 비극이 펼쳐진다.
공연은 6시간에 달하는 대작(大作)으로, 총 3막으로 이뤄졌다. 서울시향은 이번 무대로 13년 만에 오페라를 선보인다. 특히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츠베덴 음악감독이 악단을 이끌고, 국립오페라단과 해외 성악가와 호흡을 맞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츠베덴 감독을 비롯해 최 단장, 작품 연출을 맡은 스테판 메르키 모두 입을 모아 ‘협력’을 강조했다. 최 단장이 직접 츠베덴과 메르키를 찾아가 오페라에 합류하도록 설득했다.
최 단장은 “오페라 제작에는 전략이 필요한데 그중에서 캐스팅 전략이 중요하다”며 “츠베덴이 처음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부터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함께 바그너 작품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또 “2년 전부터 계획했고, 연출자도 직접 독일에 가서 (작품 참여) 요청을 드렸다”며 “제 임기의 마지막 작품인데 온 힘을 다해서 작품에 쏟아 넣겠다”고 밝혔다.
츠베덴은 “서울시향과 국립오페라단 두 단체가 협력해서 굉장히 기쁘다. 처음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취임할 때부터 (협업은) 큰 바람이었다. 제안받았을 때 너무 하고 싶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뮤지션의 입장에서 오케스트라, 연출가, 지휘자 등이 함께하는 오페라는 최고의 예술 형태”라며 “작품을 보고 듣고 연주할 생각 하니까 마치 사탕가게에 와있는 것 같은 흥분감을 감출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탕가게에 와있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독일 코트부스 국립극장에서 이 작품을 연출한 경험이 있는 메르키는 작품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지녔다”고 했다. 특히 그는 작품의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경을 우주로 했다. 원작의 ‘바다 위 항해’를 ‘우주로의 여정’으로 표현했다.
메르키는 현대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트리스탄 화성'(작품 속 반음계적 화음)으로 배경을 이같이 설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작품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밑으로 내려가는 음들과 그리움을 표현하듯 올라가는 음들을 묘사하기 위해 어떤 배경이 좋을까라는 고민했을 때 ‘우주가 정답이다’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트리스탄’ 역에는 테너 스튜어트 스켈톤과 브라이언 레지스터, ‘이졸데’ 역에는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와 엘리슈카 바이소바가 각각 더블캐스팅 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스켈톤과 포스터가 참석했다.

스켈톤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이 작품을 협연했고, 츠베덴이 홍콩 필하모닉을 이끌었을 때 바그너의 ‘발퀴레’를 함께 녹음했다. 포스터는 2022년부터 해당 역을 연기했는데 2023년 메르키가 연출한 작품에서도 이졸데를 연기했다.
스켈톤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끊임없이 다시 만나고자 하는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극 중 인물의 그리움을 해소 시켜주는 것은 음악으로, 연기하는 자신의 소리 외에도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내한한 포스터는 작품에 대해 “세 번 정도 무대에 올랐는데 음악적, 감정적 모두 너무 어려운 작품이라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저 자신을 마치 거울로 보는 것 같은 경험을 시켜준 작품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였다”며 작품이 가진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립오페라단 제작임에도 두 주인공을 모두 해외 음악가가 맡은데 대해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 단장은 이에 대해 “작품 특성상 오페라단 힘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세계적인 레퍼토리를 통해 우리 오페라단이 자체 제작 능력, 기술적인 준비상황 등을 끝까지 맞춰내며 이를 통해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츠베덴은 “이번 작품에 함께 작업하는 한국 성악가들의 실력이 너무 인상적이다. 제가 서울시향에 있는 동안 한국의 재능있는 아티스트와 계속해서 작업하고,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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