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글로벌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어느 나라보다도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크다.
예상보다 강력했던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와 급작스런 유예 조치에 금융·자본 시장은 요동쳤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라는 최악의 상황은 잠시 피했지만 미국과 중국 간 ‘치킨 게임’의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미칠 수 있다는 또 다른 불안감이 부상했다. 급변한 통상 환경이 실물 경제를 짓누르는 상황이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자본시장에 따르면 지난 1일 2521.39로 마감했던 코스피지수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이슈로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4거래일간 7.7%나 급락하며 2300선(2328.20)까지 밀렸다.
이후에도 미국의 관세 관련 발표에 따라 시장은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하면서 지수가 6.6%나 급등했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로 11일에는 0.5% 하락한 2432.72로 마감했다.
외환시장도 요동쳤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우려로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3.5% 가량 급등하며 1484.10원까지 치솟았다. 또 미국이 상호관세 유예 발표 후에는 2 거래일간 2.3% 가량 하락해 11일 1449.9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앞으로도 이런 외환·주식 시장의 변동성 장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했지만, 관세 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美 상호관세 90일 유예에도 불안감 여전…”미중 무역전쟁 호재 아니다”
최근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미국의 관세가 우리 실물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앞서 반영한 성격이 크다.
그만큼 기업들이 수출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큰 상황이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정의선 회장이 지난달 24일 백악관에서 210억달러(약 31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얼마 후 미국은 얼마 후 수입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앞으로 미국은 중국에 145%, 중국은 미국에 1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치킨게임이 시작되면, 미중 양국에 대한 교역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에도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상호관세는 90일 유예된 것이니 협상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고,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며 “처음에 발표됐던 25% 수준으로 부과가 된다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고, 국내 물가와 내수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강하게 나가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을 통해 수출을 하는 부분이 있고,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위해) 덤핑으로 물건을 내놓으면서 우리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우회 수출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 관세도) 수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통상환경 급변에 따른 공급망 관련 불확실성도 우리 산업계에 큰 부담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이 미국에 무릎을 꿇지 않을 경우에는 완제품 뿐만 아니라 부품까지 하나씩 조이기 시작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공급망의 상당 부분이 중국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피해도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안 교수는 “우리가 미국에서 중국과 맞상대를 하는 품목의 경우 약간의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하거나 중국에서 부품을 수입해 조립해서 수출하는 품목도 많기 때문에 미국의 조치에 따라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심리 위축되면 내수 경기까지 타격…”1.5% 성장 전망 더 낮춰야 할 수도”
미국의 관세 조치는 시간을 두고 수출 뿐만 아니라 국내 내수 경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관세 정책 관련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 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투자와 고용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 또 물가 상승으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국내 제조업 취업자 수는 439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5% 감소해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제조업 취업자는 3월 기준으로는 2013년 이후 1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2월 설비투자지수는 전월 대비 18.7% 상승하며 한 달 만에 반등했지만, 설비투자 선행지표 성격인 국내기계수주는 7.4% 감소하며 불안한 경기 여건을 반영했다.
미국의 관세가 수출 뿐만 아니라 내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경우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1% 중반대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하향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5%로 0.6%포인트(p)나 낮췄다.
그런데 한국은행과 OECD의 경제전망이 이뤄진 시점은 미국의 상호·보편관세 발표 전이다. 이후 발표된 미국 관세 조치의 영향을 반영할 경우 전망치가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OECD는 당시 미국과 관세를 놓고 갈등을 벌이던 캐나다(2.0→0.7%)와 멕시코(1.2→-1.3%)의 성장률 전망치를 가장 크게 낮췄다.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관세 조치가 시작될 경우 상당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는 “미국의 관세 조치로 많은 기업의 수출과 신규 투자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축소되는 영향은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기존에 전제했던 관세전쟁의 충격보다 지금은 수출에 있어서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한은이 2월에 제시했던 1.5%보다 전망치가 잠정적으로 하향 조정돼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주력 산업 경쟁력 위축돼 성장 엔진 식을 우려도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이 강화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 성장 잠재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비중은 18.7% 수준이다. 미국은 중국(19.5%)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교역국이다.
자동차(대미 수출 비중 49.1%), 이차전지(47.2%), 가전(48.5%) 등 업종은 미국의 관세 조치 이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이 품목 관세를 발표했거나 부과 예정인 철강(13.1%)과 반도체(7.5%) 산업의 위축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는 정책금융 공급을 확대하는 등 피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구조 개편도 적극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첨단전략산업기금 등 금융 지원도 강화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공급망 재편이 필요한 기업이 국내에서 핵심 소재·부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공급망 생태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오히려 대미 수출 기회가 커진 조선 업종에 대해서는 한미 협력 강화, 금융 지원 등을 통해 수주를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방침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경상수지가 22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오고 있지만 우리의 성장동력이 언제까지나 힘차게 경제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우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통상 환경 속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을 활용하며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복잡하고 긴장감 높은 새로운 ‘게임의 룰’이 등장했고 그 속에서 우리의 생존·성장 전략을 찾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미국이 어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지만, 기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관세는 부과되고 있어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며 “눈앞에 놓인 대미 관세협의 등 현안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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