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7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고운 자태로 무대 위에서 사뿐사뿐 움직인다. 흰색 저고리에 파란색과 붉은 색이 배색된 치마를 입은 이들은 기생의 ‘교방무’를 추며 한폭의 한국화처럼 펼쳐졌다.
6일 서울시무용단이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신작 ‘미메시스: 자연을 담은 8개의 춤’ 기자 시연회를 열었다.
미메시스(Mimesis)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적 개념인 예술의 본질을 재현하는 것으로, 서울시무용단은 이번 무대에서 전통춤의 본질을 끊임없이 정교화하고 재구성한다. 교방무, 한량무, 소고춤, 장검무, 살풀이춤, 승무, 무당춤, 태평무 등 우리나라의 전통춤 8가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음악이나 의상 등 전통춤의 고정된 양식에서 변화를 꾀하고, 각각의 춤이 가진 본질은 더욱 깊이 탐구해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꾀했다. 예컨대 발디딤이 돋보이는 ‘소고춤’에서는 땅을, 장검을 절도 있게 휘두르는 ‘장검무’에서는 번개를 연결했다.
작품은 총 8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물이 흐르고(교방무) 바람이 부는(한량무) 풍경, 살아있는 것들의 발 디딤으로 울리는 땅과(소고춤)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번개(장검무), 허공을 비우고(살풀이춤) 하늘로 솟구치는(승무) 움직임, 타오르는 불의 즉흥성과(무당춤) 세상을 비추는 빛이(태평무) 여덟 가지 장을 완성한다.

이날 윤혜정 서울시무용단 단장은 “저희가 모아놓은 춤은 한국 전통과 한국 민속의 종합 선물 세트다. 각각의 작품 본질을 고민하면서 자연의 흐름이 전통과 민속에 함께 숨어 있다는 걸 느꼈다”며 “본질을 고민하다 보니까 우리의 자연과 매치되더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연 현상 그것이 다 우리 전통과 민속에 녹아나 있다. 그 각각의 개성들이 이렇게 레파토리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장 교방무에 이어 3장 소고춤에서 여성 무용수들의 한복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상체 저고리는 시스루를 이용하고 딱 맞게 입고, 하체는 부풀려 화려한 느낌을 줬다.
김지원 의상디자이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전통 춤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팔꿈치와 뒤꿈치에서 나오는 강한 호흡”이라며 “그래서 저고리는 최대한 상체를 시스루로 하고 타이트하게 비춰서 전통의 호흡이 나오도록 날 것으로 보일 수 있게 했다. 바지 같은 경우도 조금 더 벗은 발의 모양들이 더 극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속치마를 시스루로 하거나, 무릎이나 뒤꿈치가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등 포인트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 복식의 가장 큰 실루엣의 특징이 ‘하후상박’이다. 상체는 굉장히 박하게 붙이고 하체는 되게 부풀리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제가 이번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상체는 박하게 붙이고 하체가 부풀어지는 전통의 ‘하후상박’ 실루엣으로 풀어냈다”고 부연했다.

각 춤의 개성을 살리는 모자나 헤드피스 등 다양한 장신구도 볼거리다. 특히 박쥐 문양이 들어간 한량무 갓과 종이접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소고춤 고깔 등이 눈에 띄었다.
엠넷 무용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에 출연했던 스타 무용수 기무간은 장검무와 태평무에서 존재감을 뿜어냈다.
제4장 장검무에서 그는 북과 꽹과리 소리에 맞춰 무사처럼 비장하면서도 단호한 움직임으로 춤을 췄다.
자신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기무간은 “한국 무용과 현대 무용이 어떻게 다른지 이번 공연을 보면 한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무용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깊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춤이다. 멈춤의 미학이 있는 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한 번 진하게 전통춤을 접할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 그런데 또 다시 해보려니까 감을 잃었다고 할까, 다시 감을 찾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 좀 적응이 돼서 무대에서 무조건 잘 해내자 이렇게 생각하며 하고 있다”며 “저 스스로를 꾸짖을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정윤 서울시무용단 부수석 단원은 “현대무용은 굉장히 에너지를 채워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면 한국 무용은 그 채워진 에너지를 넘어 무용수가 스스로 비움을 경험하면서, 비워진 상태 그 자체로 무대에서 경지를 보여줄 때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무용을 보실 때 관객들도 그런 지점을 염두에 두면 화려함을 볼 때에도 느껴지는 울림이 아마 그 느리고 고요한 에너지 속에서 더 크게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라이브 연주로 준비됐다. 거문고, 대아쟁, 대금, 태평소, 피리, 대북, 장구, 꽹과리, 정주, 징, 바라, 구음까지 12가지 악기들을 무대 아래 9명의 악사들이 연주하며 한국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국악을 들려줬다.

살풀이춤에서는 한스럽고 슬픈 감정을 아쟁이 애절하게 표현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인상 음악감독은 “기존에 있는 음악을 가지고 한 게 아니다. 무당춤은 어마어마한 작업인데 가장 포인트가 되는 면을 하나 끄집어내서 한 1분 30초~2분간 엑기스를 녹아냈다. 소고춤은 기존에 해왔던 방식이 아니고 그 이면에 맞는 특징들을 잡아내서 좀 더 미니멀하게 그리거나, 풍성하게 그린 것도 있다. 그래서 약 6개 작품은 음악을 새롭게 만들어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다만 “완전 라이브로 9명이 연주를 하는데 진행도 빠르다. 그래서 밑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전쟁”이라며 “시스템과 여러 부분들을 다 감안해 연주를 하고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미메시스’는 이날부터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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