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부드럽고 정적인 움직임 안에 굉장한 강인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호승 안무 겸 연출은 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 ‘파이브 바이브’ 시연이 끝난 뒤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국립무용단 최초로 전원 남성 무용수만 출연하는 이번 한국춤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여성 무용수 중심으로 발전해 온 한국무용에서 남성 무용수의 특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은 많지 않다. ‘파이브 바이브’는 남성 한국춤이 지닌 절제된 에너지와 낮고 깊은 중심, 고유의 신체성에 주목해 한국춤의 확장을 시도한 작품이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벨기에 현대무용 컴퍼니 ‘레 발레 세드라베(Les Ballets C de la B, 現 라게스트)’ 한국인 무용수로 활약 중인 안무가 예효승이 한국무용 안에 녹아있는 다섯 가지 본질적 요소- ‘선’ ‘장단’ ‘숨’ ‘흥’ ‘시간’- 을 발굴, 이를 바탕으로 창작했다. 이 가운데 ‘숨’이 가장 기반이 되는 핵심 요소다.
예호승은 “미술에서 그림을 그릴 때 펜이나 붓 등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하는 것처럼, 저는 호흡을 통해서 몸을 기반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들이 한국 무용과 접점이 있다고 본다”며 “제가 한국 전통춤을 추지는 않지만 저희가 그런 호흡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립무용단의 역사, 시간성, 에너지 등을 과감하게 무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준비했고 그러다 보니 중력의 움직임을 무대 위로 가져오고 싶었다”며 “아크로바틱(곡예와 같은 동작)한 동작을 통해 몸의 전체를 사용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무대에 국립무용단 남성 무용수 16명과 올해 새롭게 합류한 4명의 시즌 단원까지 총 20명이 출연하는데, 각기 다른 연령대의 무용수들이 각자 몸에 담긴 시간과 움직임을 다양한 층위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핵심이다.
예효승은 “오랜 해외 활동 속에 오히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전통과 현대는 유리된 것이 아니라 늘 함께 교차하며 흘러간다고 믿는다”며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작품의 취지를 밝혔다.
실제 이날 남성 무용수들의 한국춤 ‘파이브 바이브’는 역동적이고 파워풀하기보다는 절제되고 섬세한 느낌을 줬다.
징이 울리자 남성 무용수들은 마치 택견 동작을 하듯 느린 호흡으로 한국적인 춤사위를 펼쳤다. 남성적인 힘 대신 한국적인 곡선과 우아함, 유연성을 보여주는 춤이었다.
예호승은 “한국무용의 경우,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춤사위가 손끝과 발끝까지 전달되는 것을 늘 봐왔다”며 “몸의 일부를 사용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안무보다는 신체(전체)를 사용하는 아크로밧을 이번 작품에 가져오면서 움직임의 확장성이 느껴질 수 있다. 남성미 보다는 섬세함을 더욱 느낀다”고 강조했다.
‘파이브 바이브’ 음악은 방탄소년단 RM의 솔로곡 ‘Heaven'(2024)의 공동 작곡자이자 다양한 K팝 아티스트 뮤직비디오 및 트레일러 영상 사운드 프로듀싱을 담당해 온 송광호가 맡았다. 그는 직접 무대 위에서 디제잉도 선보일 예정이다.
사물놀이의 타격감, 판소리의 거친 발성과 공명, 북의 진동 같은 전통적 소리를 EDM(전자음악)과 결합해 춤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국악의 강렬한 울림을 EDM 사운드로 재해석해 전통과 전자음악을 결합하는 식이다.
무대는 단순한 장치나 배경의 기능을 넘어, 무용수의 움직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도록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대디자이너 박은혜는 다양한 크기의 스피커를 무대에 쌓아 올려 무용수의 호흡과 진동이 공간 전체에 퍼지도록 설계해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몸으로 감각하는 것’으로 확장했다.
AI(인공지능) 영상도 활용했다. AI로 구현한 이상화된 몸의 움직임과 실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교차하는 연출로, 감각과 실존의 경계를 넘나들며 ‘몸’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한편 ‘파이브 바이브’는 이달 25∼2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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