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의 내한 릴레이가 끝이 났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가 가을 클래식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빈 필하모닉 & 크리스티안 틸레만’ 공연이 열렸다. 5년 연속 한국을 찾은 빈필은 이번 내한 공연의 마지막 날 브루크너의 교향곡 5번으로만 무대를 꾸몄다.
지휘봉은 독일-오스트리아 낭만주의 음악 해석에 정평이 난 크리스티안 틸레만(66)이 잡았다. 틸레만은 빈필의 최근 정기연주회에 매년 초청돼 오랜 호흡을 맞췄고,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2024년)을 기념해 2023년 교향곡 전곡 음반을 발매했다. 또 지난해 악단 명예 단원으로 선임됐다. 틸레만은 이번 공연으로 한국에서 6년 만에 빈필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연주된 작품은 약 80분을 자랑하는 대작(大作)이자 까다롭기로 유명해 높은 집중력이 요구된다. 틸레만도 포디움에 올라 긴 연주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깊은 호흡을 들이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연주가 시작됐다. ‘황금빛 사운드’ 빈필의 선율은 정적을 깨우며 단번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통 악기를 고수하는 악단인 만큼 고유의 부드럽고 우아한 질감의 선율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브루크너 교향곡 중 유일하게 느린 서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빈필 연주에 기대감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틸레만의 신호에 따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저현악의 피치카토(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기법)가 연주의 문을 열었다. 그 사이를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조심스레 채웠다.
이와 반전되는 관악의 연주는 관객과 ‘밀당’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특히 금관의 선율은 공연장을 빼곡히 채워 웅장함을 자랑했다. 느리고 섬세한 선율은 귀를 간지럽혔고, 대비되는 웅장함으로 큰 낙차를 보여주며 더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틸레만은 포디움 안에서 절제된 모습으로 필요한 손짓만을 보였다. 부채질하듯 아래위로 손짓하면 곧바로 오케스트라 단원은 이에 예민하게 반응해 음이 고조됐다. 또 연주 중간마다 틸레만은 악장 라이너 호넥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단연 백미는 4악장. 1악장의 서주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구조 속에서 음악은 천천히 기세를 높였고,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악단의 음을 토해내는 듯한 빠른 선율이 폭발력을 더했다. 질주하는 듯한 리듬은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는 속도감을 연상케 했다.

틸레만과 빈필이 연주를 끝낸 후 모습은 더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장엄한 연주가 끝나면 보통 바로 박수갈채가 터지기 마련이지만, 틸레만은 연주가 끝난 뒤에도 지휘봉을 허공에 머물게 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약 30초 동안 내려오지 않은 지휘봉에 객석은 숨죽였고, 틸레만이 비로소 공연의 끝을 알리자 관객은 참아냈던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다.
과장 없는 지휘를 보여준 틸레만은 연주가 모두 끝나서야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관객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에 보답하듯 포디움에 발을 구르며 ‘쿵’ 소리를 내는 장면은 공연의 긴장감을 풀어내는 유머이자 해방의 몸짓처럼 보였다.
앙코르 없이 오로지 한 작품만을 들려준 무대였지만, 빈필이 남긴 여운은 그 이상이었다. 깊이와 균형, 그리고 빈필만의 음향이 가을밤을 온전히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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