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뉴시스] 안호균 박광온 기자 = 한국과 미국이 29일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의 세부 내용에 합의했다.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는 현금 투자로,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구성하기로 했다.
2000억 달러 규모의 현금 투자는 연간 200억 달러의 투자 상한을 설정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29일 경북 국제미디어센터(IMC) 중앙기자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2000억 달러 규모의 현금 투자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억 달러 규모의 금융투자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다. 다만 우리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김용범 실장은 “2000억 달러의 투자가 한번에 이뤄지는게 아니고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달러로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으며,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프로젝트(마스가·MASGA)와 관련해서는 “우리 기업 주도로 추진하며 우리 기업의 투자는 물론 보증도 포함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특히 신규 선박의 건조 도입시 장기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선박 금융을 포함해 우리 외환시장 부담을 줄였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한미가 대미 투자 상한을 연간 200억 달러로 설정하면서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미 투자 금액의 상당 부분은 우리 외화자산의 운용 수익(이자·배당)을 활용하게 된다. 또 부족분은 국제 시장에서 정부보증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달러화 조달에 따른 리스크는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선불’ 투자를 요구해 왔지만, 이번 합의로 투자는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에 나눠서 실행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또 투자 금액 회수에 대한 안전 장치도 마련됐다.
한국과 미국은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특정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날 경우 다른 프로젝트에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구조에 합의했다. 또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양국이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고, 20년 이내 원리금 전액 상황이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는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를 심사할 때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도입했다. 이번 합의에는 투자처 선정 과정에서 한국인 프로젝트매니저를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미 양국은 투자위원회를 만들고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협의하게 된다.
당초 우리가 미국에 요구해왔던 통화스와프는 이번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 실장은 “(협상 초기에는) 미국이 일시에 (투자를) 요구하는 개념이었고, 그렇게 하면 한국 외환시장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게 통화스와프”라며 “연도별 한도 문제로 협상이 옮겨가면서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에 단기 불안이 급속도로 번질 경우에 90일 정도 단기로 하는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장기 투자를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부연했다.
한국과 미국이 이날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에 합의함에 따라 미국의 상호관세는 일본, 유럽연합(EU)와 같은 수준인 15%로 결정됐다. 또 자동차 품목별 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지고, 반도체 분야도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게 된다. 매년 수백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게 됐지만, 최근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었던 수출 리스크는 해소하게 됐다.
전문가들도 이번 합의가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한미 합의에 대해 “(연간) 200억 달러 정도면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보는 것 같다”며 “일단 10년간이라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주어진 여건 속에서는 그래도 잘 이뤄진 합의였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는 “앞으로 세부적인 측면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이고, 얼마나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면서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느냐에 따라 성과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일단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정부가 최대 한도의 성과를 냈다고는 본다”며 “우리 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고, 일단 관세를 15%로 내렸기 떄문에 그런 면에서는 정부 노력이 성과를 보였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우리 외환보유고가 4400억 달러 정도인데 10년에 걸쳐서 절반 정도를 쓰게 되는 것”이라며 “그 기간 동안 어떤 위기가 올지도 모르는만큼, 우리가 우리가 2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동안 어느 정도는 통화스와프를 해주는 방식으로 협상을 끌고 왔어야 했는데 그게 없는건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고공행진을 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날 한미 합의 이후 야간거래에서 크게 하락했다. 이날 오후 8시20분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정규 거래 종가(1431.7원) 대비 13.40원 내린 1421.10원에 거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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