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흑인 남성 무용수가 한국인 여성 무용수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아름다운 춤사위를 선보인다. 유명한 미국 팝송 ‘마이 웨이’에 맞춰 남성 무용수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독무를 춘다.
13년 만에 내한한 세계 최정상급 미국 국립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24일 저녁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갈라 공연에서 ‘미국 발레’의 정수를 보여줬다.
올해 창단 85주년을 맞은 ABT는 고전부터 컨템퍼러리(현대) 발레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유명하다. 또 인종·젠더와 관련해 다양성을 실천해오고 있다. ABT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클래식부터 컨템포러리까지’라는 주제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
이날 선보인 고전 발레 중 하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 3막 파 드 되(pas de deux, 남녀 무용수가 함께 추는 쌍무)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마리우스 페티파의 3대 고전 발레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ABT가 1976년 처음으로 전막 공연한 이후 다양한 버전으로 수정해왔다.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와 협연 속에서 솔리스트 한성우 등 남성 무용수 4명이 여성 무용수와 함께 춤을 췄다. 한성우는 지난해 케이블TV 무용 경연 ‘스테이지 파이터’에 발레 마스터로 참여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남성 무용수들이 함께 여성 무용수를 높이 들어올리거나, 여성 무용수가 남성의 손을 잡고 계속 회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2012년 동양인 최초의 ABT 수석 무용수인 서희는 ABT가 1977년 초연한 ‘나뭇잎은 바래어 가고’ 파드되에서 기량을 뽐냈다. 이 작품은 20세기 현대 모던 발레의 선구자로 불리는 앤터니 튜더의 대표작이다. 서희는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여성의 애절함을 표현했다.
2020년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ABT 수석무용수가 된 안주원은 최근 뼈가 부러진 부상을 입었음에도 고난도 기술을 선보여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돈키호테’ 파드되에서 그는 동료 수석 무용수인 크리스틴 셰우첸코와 함께 화려한 춤사위를 보여줬다.
여성 무용수를 들어올리거나 점프, 연속 회전 등을 하며 큐피드의 화살을 맞아 청년으로 변신한 돈키호테를 연기했다.
‘마이 웨이’ 팝송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들로 제작한 ‘시나트라 모음곡’ 파드되는 굉장히 ‘미국적’인 발레를 보여줬다.
도시의 밤과 칵테일 파티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도시 남녀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신사화를 신은 남성 무용수와 하이힐을 신은 여성 무용수가 선보이는 우아하고 절제된 움직임은 발레와 사교춤의 접점을 보여준다.
아울러 ABT는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이 폐쇄됐던 시기 뉴욕에서 디지털 퍼포먼스로 초연한 ‘네로’를 선보였다.
ABT ‘간판 무용수’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인 이자벨라 보일스턴과 제임스 화이트사이드가 붉은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다.
고전 발레의 서사나 마임도 없는 이 작품에서 두 무용수는 일본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의 신비로운 선율에 따라 춤을 풀어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1947년 ABT가 초연한 ‘주제와 변주’다.
차이코프스키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G장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미국 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의 대표 안무작이다. 서사나 무대장치 없이 섬세한 움직임과 정교한 테크닉, 군무로 고전 발레의 본질을 담아낸다.
무용수들이 연속 회전을 하거나, 웅장한 군무를 출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GS아트센터 개관 기념으로 추진된 ABT의 내한 공연은 24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총 5회 펼쳐진다.
25일 공연부터는 ‘변덕스러운 아이들’과 ‘다락방에서’, ‘라 부티크’ 등 갈라 공연에 포함되지 않았던 ABT의 대표 안무를 관람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