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GS아트센터는 빈 그릇이에요. 관객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공간이죠. 예술가의 영감이나 가능성도 들어갈 수 있고요. 모든 게 포함될 수 있죠.”
박선희(50) GS문화재단 대표이사가 GS아트센터를 이같이 소개했다.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공연장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만난 박 대표는 “공연계 쪽 일은 셰프가 한 번에 몰려든 주문을 받아 20개의 화구를 켜놓고 요리를 하는 일이라고들 한다.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20개가 아닌 100개의 화구에서 각양각색의 요리를 한 느낌이었다”고 취임 후 10개월여를 보낸 소감을 밝혔다.
그만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시간들이었다.
GS문화재단은 지난 21일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초대 대표이사로 GS문화재단에 합류한 박 대표는 7개월 여 만인 지난 4월24일 GS아트센터 개관을 이끌었다.
박 대표는 100개의 화구에서 만든 요리에 대한 평가로 “설익은 것도, 오버쿡이 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진수성찬을 내보이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안 됐다”면서도 “더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봤다”고 눈빛을 빛냈다.
13년 만에 내한한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의 공연으로 문을 연 GS아트센터는 대표 기획시리즈인 ‘예술가들’을 진행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시각예술가 겸 연출가 윌리엄 켄트리지와 스페인의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의 작품을 선보였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의미 있는 첫 시도라고 생각한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고, 몰입감을 주는 공연장 자체의 구조적인 형태도 너무 좋아 예술적인 완성도는 자신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관객의 반응을 기다리는 건 마치 시험을 본 학생이 답안지의 채점을 받아보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동그라미 몇 개를 받았을까 궁금해하듯 관객 반응을 살폈다”며 웃었다.
그에게 ‘몇 점을 받은 것 같냐’고 묻자 “50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대표는 “정말 너무 좋아하시고, ‘인생공연’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 반면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여러 관객층을 위해 세분화된 장치를 둬야겠구나. 공연까지 가기 위한 촘촘한 계단을 둬야하는 미완의 숙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문가 평가에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전문가들로부터는 100점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GS아트센터만의 색깔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정말 많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GS아트센터는 2000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LG아트센터가 운영되던 곳을 약 32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다. 시작부터 LG아트센터와 비교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오랜 기간 공연 예술계에서 일하며 LG아트센터라는 공간을 좋아했던 박 대표도 이에 대해 “스스로에게 제일 먼저 했던 질문도 바로 그 지점”이라고 털어놨다.
“태생부터 다르게 세팅을 해야 살아남겠다고 생각했습니다. LG아트센터는 2000년대 혁신적인 바람을 일으킨 곳이잖아요. 2025년의 혁신은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했고, 그렇게 나온 모토가 ‘경계 없는 예술, 경계 없는 관객’이에요.”
여러 가지 장르를 연결한 입체적 예술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적 자극을 선사하는 곳이 되겠다는 목표다. 박 대표는 “장르의 경계가 없다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다. 세대에도, 물리적인 상황에서도 경계가 없는 다양함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관객의 ‘경험’에도 시선을 두고 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만 집중했다면 저희는 관객이 공연을 보겠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두고,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시도로 올해 윌리엄 켄트리지 작품 중 중요한 모티브를 화면 속에 있는 걸 실제 구조물로 구현한 바 있다. 공연에서 본 작품을 무대 밖에서 볼 수 있도록 경계를 지운 셈이다.
박 대표는 “구조물을 눈치채는 관객이 있고, 눈치 못 채고 가시는 관객이 있더라. 1년을 해서는 모두가 경험하긴 불가능하다. 지속해서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GS아트센터가 내건 또 다른 목표인 ‘미디어로서의 공간’도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박 대표는 “‘미디어’라는 건 전달하는 매체 아닌가. 우리는 ‘경계 없는 예술’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공간을 운영하려는 것”이이라며 “관객들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빈 그릇으로 운영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채우지 못한 ’50점’에 대한 부분은 꾸준히 채워나갈 계획이다.
“공연 예술계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해요. 세상은 변하고 있으니 도전을 멈추는 순간 그야말로 그냥 뒤로 가는 거죠. 사회와 계속 상호작용을 해야하는데, 그 자세를 보여주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시도할 겁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 경계 없는 도전을 해온 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왔던 그는 대학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었다. 결국 공연기획사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구직을 시도했고, 노력 끝에 현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공연 시장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고, 공연 예술의 정책과 비영리재단의 역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입사,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음악 영재 발굴과 클래식 음악 국제 교류 등을 이끌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를 지냈다.
박 대표는 “클래식을 오래 했다고 하지만 저는 사람에 관련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호문화재단에 있을 때는 클래식 음악 영재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했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 있을 때도 100여명의 연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 것”이라며 “장르가 다른 새로운 도전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GS문화재단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 공간에서 더 도전해 보고 싶은 건 연결과 확장”이라고 말했다.

“경계 없는 예술도 사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니 경계가 없어지는 거죠. 장르와 장르도 연결이 되니 사람이 없어지고요. 공연 예술계뿐 아니라 문화로 불리는 모든 것에 대한 걸 다 연결을 해보고 싶어요.”
GS아트센터의 첫 걸음을 함께하고 있는 박 대표는 이 공간이 “안식처 같은 곳”으로 커나가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에 인용됐던 “알고리즘을 굶겨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박 대표는 “현대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편향된 인식과 사고 방식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고 주어진 운명을 답습하는 것도 일종의 알고리즘 환경이라고 본 거다. 그러면서 켄트리지가 쓴 글이 ‘알고리즘을 굶겨라’였는데, 그게 정말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알고리즘을 굶길 수 있는 안식처나 피난처 같은 공간이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게 GS아트센터였으면 좋겠다. 치열한 삶을 살다가도 이곳에 오면 새로운 것을 맞닥뜨리길 바란다”며 “알고리즘을 굶겨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GS아트센터를 표방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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