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는 옆집 소년 ‘오스카’와 숲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를 향한 감정을 키워간다. 영원의 시간을 살아온 뱀파이어 일라이를 먼저 사랑했던 ‘하칸’은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 위해 점점 더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지난 3일 개막한 연극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와 학교폭력에 시달린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멸’의 뱀파이어와 ‘필멸’의 인간이 감정을 확인하고 함께 영원을 꿈꾸며 서로의 삶에 더 깊숙하게 파고 들어간다.
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렛미인’ 프레스콜에서 이지영 연출가는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 일라이지만 인간성을 갖고 있지만 사회화가 잘되지 않은 점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 표출에 서툴고 어색한 말투 사용에 중점을 뒀다”며 일라이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성을 설명했다.
‘렛미인’은 2004년 출간된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에 의해 무대화됐다.
한국에서 2016년 초연 이후 9년 만에 다시 국내 관객을 찾는다. 2020년 재연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 차례 무산되기도 했다.
일라이 역을 맡은 배우 권슬아는 2020년 재연 계획 당시 캐스팅이 됐지만 무산에 따라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무대를 통해 권슬아는 다시 일라이 역을 손에 거머쥐었다.
권슬아는 “일라이라는 인물을 처음 만났을 때 좀 어려웠다”며 배역의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뱀파이어인 일라이가) 너무 인간처럼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낯선 말투, 움직임을 고민하고 오스카와 일라이가 서로 흥미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연구했다”며 배역을 고민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권슬아는 실재하지 않는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상하는 캐릭터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일라이에게) 어떤 때는 연민이 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런 시간을 보내니 어느 순간 친해지면서 ‘너무 다른 세상에 있는 인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라이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백승연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척추를 가진 동물들이 사냥감을 노릴 때의 움직임을 오디션 때 많이 보여줬다”며 오디션 당시를 회상했다. 렛미인은 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학습하면서 이해한 생각의 흐름을 말투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10년 만에 같은 배역을 다시 맡은 배우 안승균은 “처음 오스카를 연기할 땐 어둡고 외로운 인물로만 보였지만, 지금 다시 마주한 오스카는 사랑이 많은 인물로 느껴졌다”고 말하며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했다.
그러면서 “오스카는 일라이의 세상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라며 “이런 정서를 (연기에) 염두에 두고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스카 역으로 함께 캐스팅된 배우 천우진은 “섬세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서정적인 이미지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도전 과제”였다며 “관객에게 어떤 떨림과 울림을 줄지 의문을 갖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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