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은 영화 ‘제7의 봉인’, ‘산딸기’, ‘페르소나’, ‘화니와 알렉산더’ 등 수많은 고전 작품을 연출한 스웨덴 영화감독이다.
세계 주요 영화제를 석권하고, 20세기 최고 예술가로 손꼽히며, 스탠리 큐브릭, 장뤼크 고다르, 마틴 스코세이지, 데이비드 린치, 우디 앨런, 라스 폰 트리에뿐 아니라 우리나라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감독에게도 영감을 주준 ‘영화감독들의 영화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년에 메가폰을 내려놓고 스웨덴 작은 섬 포뢰에 정착한 그는 친한 출판사 인사에게 자서전 집필을 선언하고 900쪽을 넘는 초고를 완성했다.
그는 자서전 ‘환등기'(민음사)에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카린’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영화 ‘마술사’와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거듭 나타나는 ‘환등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이 책에 그가 평생에 관계를 맺은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다수의 아내와 애인, 그의 배우들, 동료들까지 이들과의 관계에서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지닌 특유의 냉소와 번민, 정직한 욕망이 어떻게 그에게 작동됐는지는 짐작하는 과정도 있다.
목사 집안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엄한 아버지와 목사 아내라는 지위에 짓눌려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얄밉지만 가엾은 형과 누이, 그를 성숙한 인격으로 이끌어 준 할머니, 짓궂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커갔다.
그는 성적으로 각성한 계기와 스트린드베리에 대한 숭배, 연극판에서 벌어진 푸닥거리, 자신의 외도, 결혼 파탄, 경제적 곤궁, 나치 독일에 매료됐던 사건도 털어놓는다.
극장 대표로서 겪은 고충과 탈세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지내야 했던 나날들도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일화들도 있다. 세계적 스타 잉그리드 버그만과 ‘가을소나타’ 촬영 중 따귀를 맞은 일, ‘페르소나’의 촬영 장소 섭외에 애먹은 일, 리브 울만과의 사랑일, 카라얀의 예술혼과 명배우 로런스 올리비에의 몽니,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미모까지 지난 시대 영화와 연극에 관한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평가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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