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일상에서 흔히 접하며 마음의 양식을 얻는 책. 책은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시작됐을까. 만약 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물론 노벨문학상이라는 상 자체도 없었을지 모른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책 문화사를 가르치는 애덤 스미스 교수의 책 ‘북메이커’는 제책(製冊)의 기원과 역사를 조망한다. 그는 500여 년 책의 역사를 살펴보며 지금의 형태까지 발전하는데 일조한 인물 18인을 탐색했다. 책은 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제책의 흐름을 짚는다.
저자는 인쇄 기술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첫 주인공이 15세기 런던에서 활동한 네덜란드 이민자 윈킨 드워드다. 드워드는 유럽 인쇄업 초창기 인쇄공이자 출판업자를 겸한 책 판매상이었다. 당시는 유럽 전역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퍼지는 시기로, 드워드는 인쇄술이 지닌 잠재력을 포착했다.
드워드는 독자의 사랑을 받는 책이나 귀족이나 왕실의 취향에 맞춘 책을 만들어냈는데, 삽화를 넣어 시각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가 펴낸 단행본만 800여종에 이르는데, 이는 당시 영국에서 출간된 책의 15% 수준이다. 저자는 이런 드워드의 탁월한 시각을 예찬한다.
저자는 이런 드워드의 성공 요인을 대중의 취향을 파악하는 시각과 삽화를 도입한 탁월한 시각을 예찬한다.
인쇄 방식이 아닌 ‘오려 붙이기’로 책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 메리·애나 콜레트 자매들의 이야기다.
자매는 칼과 가위로 인쇄된 성경을 오려내 재배열하고 추가해 세상에 없던 형태의 성경 이야기를 선보였는데, 잘 알려진 ‘하모니 성경’이다. 일종의 콜라주식 책 만들기 기법으로, 저자는 “칼날이 지면을 베어 들어가고 처음에는 인쇄물을 파괴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책의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책을 만들어낸다”고 소개했다.
책에는 ‘대여’를 통해 책의 소비 문화를 바꾼 사람의 이야기도 담겼다. 찰스 에드워드 무디는 19세기 영국에서 유료 대여 도서관을 운영했다. 무디의 도서관은 런던, 영국 전역을 넘어 영국 식민지까지 퍼져나갔다. 무디의 도서관은 문화적 측면에서 독서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것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러면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이전에 무디처럼 혼자 힘으로 독서 문화를 온전하게 형성한 개인은 없었다”고 서술한다.
저자는 끝으로 활자를 찍어 누르는 시대에서 자동화로 발전된 시대를 조명한다. 저자는 자동인쇄기 시대를 예견하고 자신의 활자를 강물에 내던진 토머스 코브던-샌더슨의 사례를 소개한다. 또 주류 출판사가 책을 출간했던 유행에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 등장한 소규모 출판사도 말한다. 그러면서 출시된 소규모 독립 간행물인 ‘진(zine)’의 탄생을 알린다.
저자는 책의 발전이 기술 만으로 가능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20세기 초 토머스 코브던-샌더슨의 도브스 출판사에서 사용한 활자가 1470년대 베네치아 사람인 니콜라스 젠슨의 활자 꼴을 모방한 사실을 예시로 든다.
아울러 로라 그레이스 포드가 2000년대 초 책을 펼쳐낼 때 1630년대 자매 메리·애나 콜레트의 오려붙이기 기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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