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하늘 아래 새로운 걸 발견한 건 아닙니다. 다만, 언젠가 환호하거나 절망하거나 뭉클했던 순간과 재회했을 뿐입니다.”
국제갤러리 윤혜정 이사가 세 번째 예술 에세이집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을유문화사)를 출간했다. 세계 도시의 거대한 미술관부터 내 손안의 전시장까지, 예술이 놓이는 장소의 풍경을 따라 저자가 20여 년간 기록해 온 예술 경험과 사유를 풀어낸 ‘예술 견문집’이다.
이번 책은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2020), ‘인생, 예술'(2022)에 이은 ‘예술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인터뷰와 에세이로 예술가의 내면과 감정적 풍경을 조망했던 전작들에 이어, 이번 신간은 예술의 ‘시간성과 장소성’에 주목한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의 자유와 해방, 베를린 미술관에서의 극적인 대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파주로 돌아온 90대 작가 김윤신의 삶과 일의 균형까지. 이 책은 한때의 예술이 어떻게 오래도록 살아남는지를 삶과 기억, 기록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베니스비엔날레에 갈 때마다 전시를 모조리 봐야 한다는 강박과, 놓치는 전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던 저자는 어느 순간 뜻밖의 전시장에서 ‘해방의 자유와 깨달음’을 맛본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는 제왕적 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사라진 예술가 테칭 시에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자신만의 ‘인생 전시’를 경험한다.
또 일본 나오시마 마타베에서는 양혜규의 낮 전시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밤 전시를 통해 ‘아름다운 공생’이라는 감각을 곱씹는다. 그밖에도, 구순의 나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파주로 작업실을 옮긴 김윤신 작가에게서는 ‘삶과 일의 이상적 관계’를 고찰하고, 한국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덴마크와 미국 컬렉터들의 집에서는 ‘소유하는 사랑의 실체’를 마주한다.
또한 추상미술을 일상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전시기획자로서의 고민과 어려움을 되짚고, 손안의 책을 통해 예술계 뒤편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했다.
“예술가의 답은 언제, 어디, 어떻게 작품이 전시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예술이 놓인 자리마다 생성되는 고유한 이야기와 감각을 소중히 간직한다.
저자가 직접 촬영한 130여 장의 사진도 함께 수록됐다. 혼자라면 가지 않았을 베니스비엔날레의 체르토사섬, 혼자라면 느끼지 못했을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의 황홀함, 혼자라면 알지 못했을 디종 콩소르시옴이라는 공간 등 윤혜정의 시선을 따라가는 사진은 마치 독자들이 함께 예술 기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일이 우리를 변화의 순간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예술은 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경험하고 사유하며 기록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결국 이 책은 예술이라는 낯설고 불확실한 세계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사유하고, 기억하고, 때론 흔들리며 나아간 기록이다. 예술을 삶으로 받아들여 온 저자의 감각과 직업정신이 응축된 한 권의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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