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일랜드 록밴드 ‘U2’는 서정적인 록 터치에 출렁거리는 사운드, 브릿팝(Britpop) 대표주자인 ‘오아시스’는 감성적인 멜로디와 도드라진 기타 리프, 미국 하드록 밴드 ‘푸 파이터스’는 강렬한 사운드 속 귀에 감기는 기타 리프와 멜로디의 레이어, 국내 대표 밴드 ‘산울림’은 직선적이면서 순정한 사이키델릭…
명밴드는 이처럼 ‘시그니처 사운드’를 갖는다.
JYP엔터테인먼트 보이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Xdinary Heroes, XH)가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연 두 번째 월드투어 ‘뷰티풀 마인드’의 마지막 서울 공연은 이 팀이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고유 사운드’를 찾아가고 있다는 걸 증명한 자리였다.
미국 버클리 음대 출신 드러머 건일(27)을 주축으로 베이시스트 주연(23), 키보디스트 오드(23·O.de)와 정수(24), 기타리스트 가온(23)과 준한(23·Jun Han) 등 6인조 구성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팀을 막 꾸렸을 때 롤모델로 삼았던 팀은 강렬하고 화끈한 라이브 무대로 유명한 미국 오하이오 출신 ‘트웬티 원 파일러츠(Twenty One Pilots·트원파). 피아노 기반의 인디 록에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힙합이 결합된 신선하고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인 밴드다.
최근 앨범인 미니 6집 타이틀곡 ‘뷰티풀 라이프’로 출발한 이날 공연에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세련된 사운드는 물론 ‘나이트 비포 디 엔드(Night before the end)’로 선보인 록 발라드, ‘인스테드!(iNSTEAD!) 같은 헤비메탈 등 장르의 용광로를 뿜어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들려줄 수 있는 건 멤버들이 열정의 가마라는 사실도 증거했다. 음악이 왜 좋은지와 어떻게 좋은지를 두루 알고 싶어 하는 팬덤 ‘빌런즈’의 요청에 화답하기 위해 이들의 그릇이 넓은 것이다. 음악의 다양한 온도를 감각할 수 있는 범주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같은 장소에서 사흘 간 ‘리브 앤드 폴(LIVE and FALL)’을 공연했던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해당 공연장에 두 번째로 입성한 이번엔 지난 2일부터 이날까지 나흘 연속 공연하며 더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이날 무대는 또한 밴드붐의 또 다른 결을 증험하게 하는 공연이기도 했다.
현재 ‘그룹 사운드’라 불리던 시절부터 활동해온 중장년 밴드, 인디 신의 터줏대감 펑크 밴드, 평단 위주로 꾸준히 지지를 받아온 관록의 밴드, 마니아층을 확보한 대세 인디 밴드, 아이돌형으로 기획된 밴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지도를 쌓고 있는 다양한 색깔의 밴드 등이 공존하는 시대다.
최근 여기에 K팝의 경계에 서 있는 밴드들이 추가됐다. 이들은 기존 아이돌형 밴드와는 색깔이 조금 다르다. 인기 K팝 아이돌 그룹을 기반 삼은 대형 기획사에서 야심차게 기획했다. 이전 K팝 아이돌과 다른 결의 음악을 들려주지만,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 트레이닝을 잘 받았다. 연주 실력을 갖춘 데다 아이돌의 매너와 매력까지 익힌 것이다.
JYP엔터테인먼트 레이블 ‘스튜디오 제이(STUDIO J)’에 속한 ‘데이식스'(DAY6)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대표적인 예다. K팝 장르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는 이들이다. 데이식스는 이미 대형 스타덤을 구축했고, 데뷔 4주년을 향해 가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도 바통을 확실히 이어 받았다.
그런데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데이식스의 후발주자가 아니다. 다른 결로 선두주자다. 데이식스는 ‘좋은 노래’를 통해 대중의 감성에 공감하며 인기 밴드 반열에 올랐다. JYP가 이 밴드 이후 약 6년3개월 만에 론칭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색깔이 다르다. 조금 더 로킹한 사운드로 감정을 뒤흔든다.
이들의 탄탄한 연주 실력이 배인 몸짓은 마치 자유로운 춤 같았다. 각자 맡은 악기가 다르니 당연히 똑같은 동작이 나올 수 없으니 군무는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빚어내는 박자, 선율 등의 합은 그 어떤 아이돌 군무보다 역동적이었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처럼 앙코르를 포함 약 30곡을 들려주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멤버들이 공연 준비 과정에서 심적 부담을 느낀 이유다.
건일은 “세트리스트가 굉장히 하드해서 리허설은 물론 합주 준비할 때부터 반 정도 오면 좀 쉬었다가 가야 할 정도였어요. 이렇게 다 하고 나니까 후련하다”고 속시원했다.
건일은 또한 ‘불꽃놀이의 밤’의 프리 코러스에서 눈이 마주친 준한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도 힘든 걸 싹 잊었다. 원래 표정이 없는 준한이 짓는 미소에 긴장, 아픔 등 좋지 않은 모든 것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날 콘서트에서 멤버들은 악기 혹은 밴드가 자신들의 차별화를 위한 수단이 아님도 증명했다. 자신들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의 목적이 악기와 밴드 형태로 전해졌을 때 극대화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건일은 특히 서정적인 ‘꿈을 꾸는 소녀’를 들려준 후 이렇게 말했다. “빌런즈가 어디에서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약 힘들더라도 다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빌런즈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주했어요.”
오드도 빌런즈에게 힘이 되는 그 무엇이 자신들이면 좋겠다며 그 무엇이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힘이 돼 주는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빌런즈 역시 자신들도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와 빌런즈는 이처럼 서로 위로의 통로가 된다.
전날엔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가 공연을 보러 왔다. 박진영은 “표를 사서 보러 와주는 분들이 있어야 콘서트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건일은 이를 언급하며 “첫 콘서트에선 객석의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는데 지금은 꽉 차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감사하다”고 벅차했다.
아울러 이날 공연은 예전됐던 러닝타임 2시간30분을 훌쩍 넘겨 3시간 이상 진행됐다. 멤버들은 두 번의 회의 끝에 ‘앵앵앵콜곡'(앙코르 세 번)까지 소화했다.
아울러 그간 쌓여 있던 속내도 자신들의 시원한 사운드처럼 모두 쏟아냈다.
“더 킹 이즈 백”을 외친 주연은 “언젠가는 이 공연장도 작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오늘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 공연장과 작별하고 싶어요. 더 넓은 곳에서 여러분과 놀고 싶어요”라고 외쳤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음악적, 인간적 방식의 서술은 갈수록 믿음직하다. JYP의 음악 상상력이 실현되고 있다는 걸 데이식스에 이어 연이어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J의 패턴이 다른 밴드들이 이렇게 우리 대중음악의 결을 계속 넓혀나가고 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이후 17일(이하 현지시간) 방콕, 31일 쿠알라룸푸르, 6월14일 부산, 21일 자카르타, 25일 수라바야, 7월11일 타이베이, 20일 대구, 26일 싱가포르, 8월 2일 브루클린, 5일 워싱턴 D.C., 8일 애틀랜타, 10일 어빙, 14일 로스앤젤레스, 16일 새너제이(산호세) 등지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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