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사이키델릭 펑크록 밴드 ‘델타시퀀스(DELTA SEQUENCE·DTSQ)’는 한국 록 신에 두고 두고 회자될 팀이다. 김수현(보컬·기타), 이준섭(기타·신시·보컬), 박순평(드럼) 등을 중심으로 2013년 결성돼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 밴드는 2015년 첫 EP ‘디그 아웃 프럼 A 박스 인 더 베이스먼트(Dig Out From A Box In The Basement)’를 발표한 이후 공연에서 폭발적인 에너지와 비주얼아트를 주요 무기로 삼으며 입소문이 났다.
국내 인디밴드로는 드물게 전자음악과 재즈적 음악요소를 배치했다. 2016년 인디 밴드를 발굴하는 스페인의 ‘프리마베라 프로(Primavera Pro)’의 ‘더 넥스트 빅 싱’에 초청되기도 했다. 2020년 초에도 쇼케이스를 비롯해 상당수 해외 무대가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가 이들의 발목을 잡았고, 팀은 아쉽게 해산됐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외 음악 신뿐 아니라 곳곳에 이들의 흔적이 남겨 있다. 10만장가량 자신들의 로고가 담긴 스티커를 생산해 지구촌 곳곳에 붙이고 다니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이를 전 세계적으로 퍼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들도 자신들의 스티커가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 모른다. 이는 ‘음악은 도처에 있다’는 일종의 메타포다.
현재 가장 핫한 사이키델릭 록 밴드 ‘와와와(Wah Wah Wah)’로 활동 중인 김수현·이준섭은 최근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프리마베라 프로로 귀결됐던 9년 전 유럽 투어를 떠올렸다.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긴 투어를 진행했던 두 사람은 “빈털터리로 투어를 했어요. 남자 네 명이서 한 달 동안 400만원으로 버텼는데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는 남는 돈이 하나도 없어서 걸어 다녔어요. 지금 그 때로 돌아간다면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웃었다.
이런 외골수적인 면모가 개러지, 서프, 크라우트록을 넘나드는 와와와 활동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김수현과 이준섭 그리고 대세 밴드 ‘실리카겔’의 최웅희, 밴드 ‘데드버튼스’ 출신 서원석으로 구성된 4인조다.
모든 것을 자신들이 다 한다는 ‘DIY 밴드’의 정신으로 약 10회의 클럽 공연을 직접 기획하며, 꾸준히 국내 팬들을 만나왔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집단적 합주가 강렬하다.
해외에서도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유럽 최대 음악 쇼케이스 페스티벌인 독일 리퍼반 페스티벌, 베를린에서 두차례 공연을 하고 온 와와와는 장르 특정적 팬층이 많은 영미권과 유럽 시장에서 눈도장을 받는 중이다.
최근엔 실리카겔 김춘추의 솔로 프로젝트 ‘놀이도감’과 협업해 발매한 EP ‘우부부(UBUBU)’로 음악 팬들 사이에서 호평을 듣는 중이다. 김춘추의 작업실에서 서로의 데모를 들려주다가 놀이처럼 시작된 이번 음반에 대해 팬들 사이에선 “라부부보다 우부부”라는 말도 나돈다. 밴드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완성도 높은 곡들은 직관의 문으로 들어가 감각의 문으로 나온다.
실리카겔에선 베이스, 와와와에선 기타를 연주하는 최웅희는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고 각자의 프로젝트라 아무런 도움 없이 해내야했다”면서 “전문가들이 모이니 이 정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교집합도 확인했다”고 뿌듯해했다.
김춘추는 DTSQ 활동 초창기부터 이 팀에 대한 존중심이 컸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이들의 스티커가 현지 전봇대에 붙여져 있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고, 실리카겔 동료 최웅희를 통해서 와와와의 매력도 계속 전해 듣고 있었다.
김춘추는 “DTSQ는 좋은 의미로 외골수적인 취향을 갖고 있고 어떤 것들에 대해 굉장히 깊숙한 면모를 보여준다”면서 “장르에 대한 경계가 희미해지고 모든 것이 퉁 쳐지는 경향이 있는 흐름에서 와와와는 장르적인 색깔이 뚜렷해서 더 깊다”고 들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정말 존중을 표해요. 저 역시 장르 음악들을 좋아해서 이번 협업이 귀했다”고 부연했다.
이준섭도 “춘추 씨 음악적 조각들을 좋아했어요. 두 팀이 만나서 예상하지 못한 음악이 나왔다”고 흡족해했다.
와와와 출발은 김수현의 원맨 밴드였다. 김춘추의 놀이도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김춘추는 실리카겔이라는 거물 밴드를 하고 있음에도, 솔로로서 와와와와 협업을 하며 밴드의 매력을 새삼 깨달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면서 내는 결과물은 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효율성을 떠나서 밴드 형태가 주는 에너지가 좋다는 걸 느꼈죠. 밴드를 이미 하고 있지만 솔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공동체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어요. 밴드를 하면서 못해 본 것을 하기 위해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밴드에 대한 재미를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구조라는 생각도 듭니다. 친구를 만나 복작복작거리는 것도 좋고요. 와와와와 협업을 통해서 음반을 낸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뭉친 프로젝트가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김춘추)
김수현은 코로나 이후 밴드를 해체하고,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초창기엔 놀이도감 같은 포맷이었고 이후 밴드화가 됐다.
그는 사실 외부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감정 다툼으로 인해 기분이 상해 마음을 비운 상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도감과 협업은 기대 이상이었다. “예측할 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담아야 하는데, 양쪽의 감정 사태가 맞아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졌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와와와 비주얼을 전부 담당하고 VJ도 하는 오햄킹(Ohamking)은 이번 앨범 영상 작업에 디오라마(큰 막 앞에서 미니어처 등을 사용해 장면, 풍경 등을 만드는 기법)를 사용했다. 그는 “스케치 때부터 곡들을 들어오면서 디오라마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특기했다.
이런 인간의 손 때가 묻은 물리적인 작업은 와와와, 놀이도감 사이에서도 화두다. 최근 유럽 차트에서 돌풍을 일으킨 4인조 신예 인디 사이키델릭 록 밴드 ‘벨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이 뒤늦게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사실이 밝혀지는 등 밴드 신에서도 AI가 대형 이슈지만 와와와와 놀이도감은 오히려 물리적인 밴드의 힘을 믿게 됐다.
김수현은 “AI 밴드는 새로운 걸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걸 답습해 사운드의 이질감이 있었다”면서 “인간은 하고 싶어 하는 자유 의지가 있는데, 그 휴머니즘을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김춘추 역시 “전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에 대한 신념이 있어 인간의 표현력을 믿어왔어요. 레코딩을 하는 입장에서 소스의 공간감, 실제 악기의 연속적이지 않은 미묘한 느낌, 선형(線形)적이지 않은 패턴 등 제작하면서 생기는 여러 변수는 물리적으로 몸에 닿게 하는 행위들이자 실제 밴드의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형태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AI가 하지 못하는 밴드의 매력”이라고 특기했다.
오햄킹은 최근 어느 라이브 공연장에서 붙어 있던 포스터에서 AI와 다른 질감의 영감을 얻었다. 삐뚤삐뚤한 서체 등에서 유기성과 날 것의 매력을 느낀 것이다. “저 역시 수작업을 계속 해왔던 사람이니까요. 투박한 느낌의 풀칠 같은 수작업 형태로, 벽돌 하나 하나 쌓듯이 하는 디오라마를 AI는 못할 거예요. 누군가는 바보처럼 볼 수 있지만 요즘 시대에 (AI와) 더 반대로 가자는 생각입니다.”
와와와, 놀이도감은 올해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서 함께 무대에 오르며 이번 앨범의 수록곡 일부를 라이브로 처음 공개했다. 두 팀은 이번 컬래버레이션 음반 발매를 기념해 오는 19일 오후 6시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합동 공연을 연다. EP 수록곡 다섯 곡을 중심으로 다양한 곡들을 들려준다.
특히 오햄킹까지 나서 처음으로 VJ 영상 작업이 곁들여지는 형태다. 그는 “안 해본 비주얼적인 부분들을 선보이고자 했다”면서 “와와와의 시끄러운 모습, 놀이도감의 잔잔한 모습 등을 스위치하면서 풀어내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팀워크보다 팀플레이를 지향하는 실리카겔인 만큼 최웅희는 다양한 밴드 형태에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그는 “제가 라이브 공연에서 보컬을 합니다. 제가 노래를 굉장히 못해요. 하지만 노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 않나요”라고 웃었다.
김춘추는 “콘서트에선 이번 음반 수록곡뿐 아니라 놀이도감의 곡들, 와와와의 곡들을 각자 연주하거나 ‘우부부’ 수록곡이 아닌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곡들을 선정해서 연주도 해요. 각자의 습관이나 취향, 버릇들이 새로운 형태로 만나는 느낌이라 이번 공연의 재미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두 팀이 만나서 작업 전반이 잘 굴러갔고 많이 배웠고 공연을 만들면서 또 많이 배웠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합니다.”(이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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