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S, M 사이즈가 모두 품절이었다. 낭패였다. 내 L 사이즈 집업을 사는 데엔 아내 것도 동반돼야 당위성이 더 획득됐다. 하지만 미래의 걱정보다 당장의 일이 시급했다.
얇아지고 있는 지갑에도 지난 16일 서울 을지로 소재 뉴스 뮤지엄(N:NEWS MUSEUM)에서 개점한 ‘오아시스 라이브 ’25 팬 스토어(Oasis Live ’25 Fan Store)'(26일까지)에서 ‘구매할 결심’을 한 이유다.
국내 팝업 스토어에서 언제 품절될 지 모르는 아디다스 협업 집업과 검정 천 속 파란 사각 바탕에 오아시스 로고가 흰색으로 영롱하게 새겨진 서울 한정판 반소매 티셔츠를 샀다.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Oasis)’에 대한 40대 아저씨의 열정 만큼은 아내가 이해주리라 믿으면서.
그런데 내 옆 계산대 젠지는 과감했다. 내 굿즈 구매액보다 3배에 가까운 물품을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해당 팝업은 30분 회차가 하루 18회씩 11일간 열린다. 한 회당 60명가량으로 1만1000명이 넘는 규모인데 단숨에 예약이 끝났다. 상당수가 젊은 층으로 알려졌다. 실제 팝업 첫날엔 20대로 보이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첫날 현장에선 만난 갓 스무 살이 넘은 대학생 김소현 씨는 “원래 K-팝 아이돌을 좋아하다가 최근 밴드에 관심이 생겼는데 오아시스의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두 형제의 영화 같은 서사가 이전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팝업은 오아시스가 올해 7월 웨일스 카디프 프린시팰리티 스타디움에 재개한 투어의 일환으로 오는 21일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여는 내한공연을 기념해 열린 것이다.
티켓 예매사이트 놀(NoL) 티켓에 따르면, 단숨에 매진된 이 공연의 10~20대 예매 비율은 63.4%(10대 7.8%·20대 55.6%)에 달한다. 30대 28.6%까지 합하면 10~30대 비율이 무려 92%에 이르는 것이다.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함께 한 40대 이상이 고작 남은 비율을 차지한다. 아마도 중년들이 피케팅에서 민첩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아시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광은 여전히 신기하다. 오아시스의 내한공연도 16년 만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젊은 음악 팬들 사이에선 브릿팝 열풍이 불었고, 노엘 갤러거가 그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드’와 함께 한 내한공연엔 10~20대가 그룹 ‘뉴진스’ 가방을 메고 찾았다. 쿨함의 표상인 노엘 관련 일화가 밈(meme)이 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릿팝 4대 천왕’ 중 ‘블러’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한 음악 평론가는 지금과 같은 오아시스 열풍에 의아함을 표했지만 여전히 활동 중인 네 천왕 중 인지도, 인기적인 측면에선 오아시스가 절대적인 건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버밍엄 시립대학교의 분석에 따르면, 오아시스 이번 투어는 티켓 판매와 상품 판매로 4억 파운드(약 7439억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아시스는 11월까지 영국과 아일랜드, 북미, 오세아니아, 남미를 아우르며 41회 공연한다. 티켓은 약 138만장을 팔아치웠다. 이 중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로스앤젤레스(LA) 로즈 볼 스타디움 공연은 각각 9만석 규모다.
오아시스의 두 축인 노엘과 리엄은 형제임에도, 아니 형제라서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묘한 경쟁심과 숨길 수 없는 애증을 갖고 있었다. 오아시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의 관계였다. 리엄은 노엘의 작곡 능력을, 노엘은 리엄의 무대 위 리더십과 신체 조건을 서로 부러워했다. 이런 질투심이 다른 밴드들과 다른 긴장감을 형성해냈고 그것이 팀의 추동력이 됐다.
전성기 시절에도 끊임없이 부딪히던 두 형제는 해체 15년 만인 2024년 8월 돌연 재결합을 발표했고 해체 16년 만인 올해 월드 투어를 진행하며 건재를 과시 중이다.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 즉, 화내며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기. 원수보다 서로를 더 적대하던 두 형제가 다시 뭉친 현재 상황에 이 노래만큼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대중음악에서 노래만큼 팀의 서사는 중요하다. 세계관을 직접 빚어내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최근의 대중음악 경향과 달리, 멤버들의 속성 자체가 서사가 되는 오아시스는 젊은 세대에게 신선하다. 콘텐츠 전성 시대에 오히려 날 것이 빈곤해지는 상황에서 오아시스의 공백은 상상력을 위한 오아시스가 된다.
한 밴드의 서사는 팬들과 만나 더 넓어진다. 오아시스가 16년 공백을 무마시키며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은 40대 이상에겐 잃었던 젊음을 되찾는 일이며, 젊은 세대에겐 그 젊음의 영속성을 유지해갈 수 있는 방법을 골몰하게 한다. 늘 오아시스와 같이 나아가면 음악과 같은 삶이 될까, 안 될까. 남녀노소 상관 없이 영원히 젊음을 포기하지 않기.
이번 내한공연을 앞두고 국내 발간된 오아시스 두 인터뷰집에서 각각 인상적인 구절을 인용해본다.
“그야말로 굉장한 여름이었다. 여름 내내 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역대급으로 큰 공연장들을 누볐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등장은 슬라이스치즈 발명 이후 가장 큰 사건이었다.”(1996년 8월 10~11일 넵워스 파크 영국 하트퍼드셔)(‘오아시스 1994-2009 / 2025’ 중(질 퍼마노브스키·노엘 갤러거 지금·김영진 번역·서해문집 펴냄)
“오아시스 같은 밴드의 멤버로 살면 사생활이란 걸 많이 포기하게 돼. 근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돈도 개많이 벌고, 개좋은 음악 만들고, 사람들한테 감동 주고, 그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고, 남들 삶에 의미를 주면 내 삶에는 더 큰 의미가 생기곤 했으니까.”(‘슈퍼소닉: 오아시스 공식 인터뷰집’ 중(오아시스 지음·김하림 옮김·다산책방 펴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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