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유리 그리고로비치와 문병남 선생님 두 분이 안 계시니까 내 발레 인생도 끝난 것 같습니다.”
한국 발레계의 ‘레전드’로 꼽히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66)이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제15회 대한민국발레축제 특별공연 커넥션(conneXion·연결)에서 최근 별세한 러시아 출신의 ’20세기 발레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98)와 한국의 ‘창작발레 거장’ 문병남(63) M발레단 예술감독을 추모했다.
최 전 단장은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에서 “두 분이 있어서 잘해왔다” “문병남 선생님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로비치는 지난 2001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당시 최 단장이 이끌던 국립발레단과 함께 볼쇼이 발레의 간판 레퍼토리인 ‘스파르타쿠스’를 국내 초연했다. 그는 자신의 안무작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레이몬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국립발레단 무대에 올릴 때에도 단원들을 지도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최 전 단장이 2017년 9월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협업했다고 한다.
최 전 단장은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에는 제2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면서 “무용수는 무대에서 작품을 만날 때 성장하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까만 고민했고 그때 그를 만났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리고로비치 선생님이 많은 유산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진짜 좋은 작품들, 클래식 발레의 원작들을 남겨주셨다”고 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발레 작품도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레이몬다’와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을 지낸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이 만든 창작 발레 ‘왕자호동’이었다. 김지영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이재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레이몬다’ 파드되(2인무)를, 김리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정영재 M발레단 수석발레마스터 겸 무용수는 ‘왕자호동’ 파드되를 선보였다.
국립발레단이 세계 최고의 발레단인 러시아의 볼쇼이로부터 유산을 전수받았다면,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의 유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최 전 단장은 물론,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62)의 역할이 컸다.
문훈숙은 “구소련 당시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은 비디오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발레단이 미국 순회 공연 중에 제 영상을 본 것이 계기가 돼 1989년에 ‘지젤’ 공연에 초대받아 공연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교류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2년 ‘백조의 호수’를 유니버설발레단 무대에 올리려다가 거절당했던 일화를 전했다. 문훈숙은 “백조의 호수를 올리고 싶다고 했더니 첫마디가 ‘안된다, 그걸 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거절당했다”며 “겨우 설득한 뒤 무려 6개월을 준비해 올렸더니 마린스키에서도 그 근성에 크게 감동하더라”고 했다. 이후 마린스키발레단 예술감독을 23년 간 역임한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약 10년 간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세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창작 발레 ‘심청’ 덕분이었다.
문훈숙은 “뉴욕타임스, LA 타임스 등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항상 좋게 평가를 하고 있고, 또 외국인들이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심청과 아버지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많이 볼 수가 있다”며 “2003년에 파리에서 공연을 했는데 프랑스 발레의 대모로 불리는 클라우드 베티가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프랑스 발레가 한국 발레에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심청은 2011년부터 전 세계 투어 메인 작품으로 발레 본고장인 러시아와 프랑스 무대에서 현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토크쇼가 끝나고 2017년 은퇴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황혜민이 8년 만에 토슈즈를 신고 창작 발레 ‘심청’의 파드되를 소화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이현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의 ‘라 바야데르’도 이어졌다.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에서 31일 ‘코펠리아'(광주시립발레단), 오는 6월 4일 ‘샤이닝 웨이브'(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 7~8일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 드리머'(안무 유회웅), 13~15일 ‘발레 춘향'(유니버설발레단)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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