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배를 집 삼아서 봄이면 광둥성 일대를 돌았고, 가을에는 장사를 했다.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로 노상 겪고 살았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물살을 점치는데도 이골이 났단다. 그러니 바람과 파도의 험난함도 감당할 수 있고, 항해의 온갖 위험을 이겨낼 수 있어.(옥영 대사 중)”
서울시극단의 연극 ‘퉁소소리'(연출 고선웅)는 원작 최척전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불러내 전쟁 속 민초들의 고난과 회복, 그리고 여성 주체의 목소리를 생생히 드러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옥영이 오르면, 관객들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삶을 개척하는 강인한 조선의 어머니와 마주하게 된다.
‘퉁소소리’는 조선 중기 문인 조위한의 소설 ‘최척전'(1621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평범한 삶을 살던 최척 일가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청 교체기라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30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단연 옥영이다. 옥영은 열녀'(烈女)를 장려하던 시대를 거슬러 남장을 하고, 바다를 건너고, 사랑을 쟁취한다. 단순한 모험을 넘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옥영의 며느리 홍도 역시 강인한 여성이다. 홍도는 조선에 파병된 청나라 군인인 아버지와 헤어져 전쟁의 참상을 겪는 또 다른 여성이다. 옥영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힘을 실어주고, 고난을 함께 한다. 조선의 어머니와 중국의 며느리는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연대’를 통해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객석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연극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전쟁 서사를 해학으로 풀어낸다.
목숨을 끊으려는 옥영을 대들보에서 떼어내며 “이런 못된 대들보”라고 내뱉는 장면, 중국어 대신 억양만 흉내 내는 청나라 병사들의 대사에 객석에선 폭소가 터져나온다.
140분이라는 긴 공연 시간에도 빠른 전개 덕분에 관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작품의 백미 중 하나는 최척이 부르는 ‘퉁소소리’와 라이브 국악 연주다.
최척이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퉁소소리는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과 그리움의 정점이다. 퉁소소리를 듣던 후금의 병사는 “왜 고향의 엄마가 생각나지”라며 눈물을 훔친다.
무대 아래에서 들려주는 6인조(퉁소, 해금, 가야금, 거문고, 장구, 양금) 라이브 연주도 애절한 정서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특히 최척과 옥영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깔리는 국악 연주는 전란 속 민중이 살아온 흔적과 위로를 함께 전하며 감동을 배가시킨다.
연극 ‘퉁소소리’는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대상 문화부문 대상, 2025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고선웅 연출이 1년 만에 다시 선보인 재연은 오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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