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나한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나한테 나는 없어.”
장애가 있는 17세 아들 조이를 키우는 아버지 제이크의 서글픈 고백이다. 모든 상황을 체념한 듯한 담담한 말투가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의 체념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아내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일찍 세상을 떠났다. 촉망받는 작가였던 그는 선천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며 자신의 삶은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 생활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싶지만, 아들이 사춘기가 되며 걱정거리가 또 늘었다.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성에 눈을 뜨고, 사랑을 갈망하는 아들을 보는 제이크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게다가 아들은 태아 알코올 증후군으로 뇌가 손상돼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친구 라우디와 독립해 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설상가상 제이크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난달 6일 네 번째 시즌을 개막한 연극 ‘킬 미 나우’는 장애를 지닌 17살 소년 조이와 그의 아버지 제이크를 통해 장애, 돌봄, 가족, 존엄사 등을 다룬다.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상처가 있다.
학교에서 “괴물 같다” 놀림을 받는 조이는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바란다. 제이크는 조이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그를 돌보는 일이 지친다.
조이의 고모이자 제이크의 여동생 트와일라는 밝은 얼굴로 그들을 돕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조이의 유일한 친구 라우디는 온전한 가정에서 자란 경험이 없고, 제이크의 연인 로빈은 무관심한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제이크와 내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삶을 지탱하고 있다. 현실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건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제이크가 병에 걸리며 변곡점을 맞는다.
조이는 휘청거리는 제이크에게 “내 휠체어에 기대”라며 다가간다. 17년간 아버지에게 돌봄을 받아온 조이와 늘 그를 지켜온 제이크의 관계도 그렇게 바뀌어 간다.
점차 아들 조이처럼 말이 어눌해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된 제이크는 삶의 끝을 선택하고자 한다. 모두가 그를 만류하지만,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조이는 아버지의 결심을 지지한다.
켜켜이 쌓인 이야기 속에 등장인물 모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작품이 중반을 지나고부터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점차 커지는 건 인물들의 고민과 고통, 사랑이 낯설지 않아서일 테다.
8월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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