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사람들이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안전하지 못한 시설로 목숨을 잃는 비슷한 사건·사고가 되풀이되는 상황을 경험하면 마음이 먹먹하고 무겁습니다.”
지난해 연말 제주항공 참사를 마주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몽스님이 여전히 무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몽스님은 “참사 비행기 잔해와 폭발하고 타다만 재 냄새가 참혹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며 “공항 옆 체육관 합동분향소에 많은 시민이 추모와 봉사를 해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12.29 참사 다음 날 사노위 소속 스님들과 함께 무안공항으로 내려갔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희생자 위패와 사진을 모신 공항 내 분향소와 사고현장이 보이는 가까운 곳에서 희생자 179명의 넋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기도하고 있다. 49재 마지막 날인 오는 2월 1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현재 희생자 유해 인도가 완료되어 개별 장례가 진행 중이며, 정부 주관 합동위령제가 18일 무안공항에서 열린다.
조계종 사노위는 지난 2012년 부처님의 평등과 자비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불평등과 부당함에 힘들어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여러 소외계층의 아픔을 함께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려고 조계종이 설립한 대사회적 단체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근현대사의 아픔과 사회적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재 또는 위령재를 통한 대사회적 추모다.
근현대사 아픔인 6·25전쟁, 제주4·3항쟁,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재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 수요시위를 매년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른 하나로는 이태원, 오송지하도, 화성 아리셀 공장, 세월호에서 발생한 사회적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49재와 추모재로 종교를 초월한 사회적 의례를 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 파인텍과 콜트 콜텍, KTX 여승무원 문제, 김용균 청년노동자,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아시아나KO, 대우조선 등에서 벌어진 노사갈등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에도 목소리를 내고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활동도 한다.
지몽스님도 노동, 인권, 빈곤, 사회적 참사로 인한 부당함과 부조리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농성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서로 존중되고 배제당하지 않고 안전한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함께 기도하고 3000배를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있어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활동하면서 종교인이지만 저 역시 만나는 모든 분을, 자비심을 내어 대해야 하지만 때때로 상황 판단이 모호해 그렇지 못할 때가 있어 마음이 아주 힘듭니다.”
지몽스님이 함께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몽스님이 지속적이고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활동은 차별금지별 제정 촉구다.
지몽스님은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 혐오와 편견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사회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권을 보장받고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곳이 되기 바라며 차별금지별 제정촉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며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은 우리사회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자 의식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몽스님은 “우리 사회가 통합, 협치, 화합, 공감, 소통, 공정, 상식을 강조하고 이야기해 왔지만 분열, 단절, 불통, 불공정만 심해지는 것 같다”며 “도덕과 인성이 무너지고 실종되어 가는 현실에서 그 누구도 배제되고 소외되지 않고 함께 나아가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고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제정해 그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몽스님은 몇 년 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사노위 스님들과 국회까지 30㎞를 10일간 진행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오체투지 행렬을 향한 시민들의 박수와 화이팅 외침, 음료수를 놓고 간 슈퍼 사장님, 힘내세요! 라는 초등학생들의 밝은 목소리, 인천에서 온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의 울먹이며 토로했던 간절한 목소리, 피켓을 들고 “발달장애인도 차별받고 있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발달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지몽 스님의 귓가에 맴돈다.
지몽스님은 “넓은 교차로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차를 막아서 우리를 오히려 보호해주는 모습에서 그들의 눈물겨운 바람이 가슴에 따뜻하고 강렬하게 아직도 남아있다”며 “돌이켜보면 종교인이란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농성장이나 집회에서 그들과 함께할 때면 매번 삶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시울을 붉힌 적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을사년 새해에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를 꿈꾸는 지몽스님은 불교 경전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이가 좋지 않은 뱀의 머리와 꼬리가 있었는데 꼬리는 항상 머리가 앞장서고 뒤따라가는 게 불만이었다. 머리와 꼬리는 나날이 다툼이 잦아지고 커지던 어느 날 이에 지친 머리가 꼬리에게 선두를 양보했다. 하지만 꼬리에는 눈이 없어 앞에 있던 불구덩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타죽는다.
이 이야기는 앞의 위험을 식별하고 알아차리는 능력도 없으면서 고집으로 앞으로 나서는 꼬리나 눈이 없는 그런 꼬리에게 앞을 내주는 교만한 머리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함께 가느냐! 따로 가느냐! 부디 우리가 바른 선택을 해서 사랑과 자비가 뿌리내려 모든 존재가 소외되지 않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오길 꿈꿔봅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참사로부터 안전망을 더 촘촘히 만들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엄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오길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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