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지난 8월 단편 ‘김춘영’으로 김승옥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최은미(47)가 ‘짧은 소설’ 시리즈의 신작 ‘별일’을 펴냈다.
앞서 박완서, 김금희, 김초엽 등 한국 문단의 주요 작가가 참여해온 시리즈로, 15매 분량의 짧은 호흡으로 작가들의 통찰력, 재치, 위트 등을 남아내는 마음산책의 기획이다.
최은미는 이번 책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법한 일상의 장면을 포착해 자신 만의 짧은 서사 리듬으로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의 미세한 결을 그려낸다.
“장편과 단편을 쓸 때는 서사 속 세계를 공들여 직조하는 편인데, 짧은 소설에서는 인물이나 상황 속으로 일단 뛰어들고 보는 느낌으로 썼어요.”
뉴시스와 서면으로 만난 그는 “10매 안팎으로 더 짧게 쓰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호흡이 길어져 30매 안팎이 가장 많다”며 웃었다.
책에는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웹진 등에 발표한 11편이 실렸다. 글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보통의 일상을 조명한다.
표제작 ‘별일’은 아파트 내 담배 연기에 시달리던 중희가 범인을 찾으러 나서며 단지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이웃들을 만나는 내용이다. 첫 수록작 ‘한철’은 해변 식당의 사장과 손님이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최은미는 ‘짧은 소설’의 매력을 “도움닫기의 긴 과정이 없이도 세계의 한 순간, 한 단면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으로 꼽았다.
그는 “어떤 긴 서사보다 때론 강한 환기와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작가도 독자도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그는 11편의 단편들에 공통적으로 ‘별일’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보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는 순간들이 있어서다. ‘별일’ 아닌 일들이 ‘별일’이 되는 순간, 즉 ‘별일’이란 평범함과 특별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이다.
“별일로 명명할 때 역으로 드러나는 일상의 질서들, 무늬들을 생각하게 돼요. 곱씹을수록 ‘별일’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좋았어요.”

표지 속 수채화로 그려진 인물들 역시 평범하게 걷고 있는 것 같지만, 각자의 ‘사연’을 품는다.
그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적인 몸짓으로 걷거나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실은 이 한명 한명이 각자의 ‘별일’ 속에서 각자의 크고 작은 사건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소설의 영감은 작가가 몸으로 감각한 현실에서 비롯됐다.
최은미는 “(소재를) 주로 현실에서 착상하는 편이지만, 특히 이번 짧은 소설에서 더욱 그랬다. 마음껏 그럴 수 있었던 과정이 즐거웠다”고 했다.
수록작 ‘이야기 모임’에 나오는 ‘양배추 맛있게 먹는 법’이나 ‘이상한 이야기’에서 갓 찐 만두를 보고 허기를 깨닫는 순간 등은 모두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너무도 사소하고 일상적이고 실없어 보이는 것들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와 반짝이게 되는 과정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전체적인 서사 톤이나 문체에 반영됐을 거예요.”
그에게 소설의 출발점은 ‘지금 이걸 쓰고 있는 나’다.
그는 “이 소설을 쓰려는 나 자신의 현재에 대한 분석이 전제돼야 인물에 대한 거리감을 조정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이것이) 집필에 있어 가장 중요하지만 어렵다”고 토로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때론 서로를 통해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기이한 면을 포착한다. 작가는 타인과의 교류를 다채롭게 그려냈다.
“우리가 자신을 정확히 자각하는 건 언제나 타인을 통해서라고 생각해요. 내 안의 분노, 혐오, 수치, 열망, 선의. 친밀한 타인이 곱씹고 또 곱씹어온 내 안의 감정을 계속 재해석하게 해주는 존재라면, 낯선 타인은 나한테 있는지조차 몰랐던 요소들을 불시에 드러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최은미는 2008년 단편소설 ‘울고 간다’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너무 아름다운 꿈'(2013), ‘목련정전'(2015), ‘눈으로 만든 사람'(2021) 등을 펴내 젊은작가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번 김승옥문학상은 그에게 또 하나의 ‘확신’이다.
“상은 언제나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동시대성을 가늠케 해주고 ‘계속 그렇게 써도 돼’, ‘니가 쓰는 글을 믿어’, ‘작가로서의 너를 믿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계속 써나가는 데 있어 정말 큰 원동력이 됩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네번째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 ‘눈으로 만든 사람’ 이후 4년간 발표해 온 단편소설을 엮을 예정이다.
작가는 차기작에 대해 “코로나 재난을 겪은 이후 더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타인들과 어떻게 연결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싶었던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상 속에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존(zone)에 대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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