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김종민 기자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의 반도체 인재를 겨냥해 직접적인 구애에 나섰다. 머스크는 최근 자신의 SNS 계정에 16개의 태극기 이모티콘과 함께 테슬라코리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공유하며 “한국의 유능한 엔지니어들은 테슬라와 함께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세계적인 스타 경영자가 특정 국가의 인력을 콕 집어 러브콜을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테슬라가 이처럼 한국 인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구현에 필수적인 AI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기존 반도체 제조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시장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미국 현지에 전용 생산 시설을 갖춰 직접 설계와 생산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 기술과 설계 능력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들은 테슬라의 가장 매력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 3가지만 써라”… 파격적인 채용 방식
테슬라코리아의 이번 채용은 방식부터 남다르다. 복잡한 서류 전형 대신 ‘본인이 살면서 해결한 가장 어려운 기술적 문제 3가지’를 기술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학벌이나 스펙보다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S급 인재’를 선별하겠다는 머스크 특유의 실용주의적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채용된 인력에게 제시되는 조건 역시 파격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를 비롯한 엔비디아, 구글 등 미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최소 26만 달러(약 3억7500만 원) 수준의 기본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성과에 따른 스톡옵션과 사인온 보너스(입사 축하금)를 합치면 실제 보상은 국내 대기업의 2~3배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메타가 오픈AI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1억 달러 규모의 보너스를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AI 인력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애국심만으론 못 잡아”… 보상 체계 개편 목소리
국내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문화와 보상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인력 유출은 단순한 개인의 이직이 아니라 국가적 자산인 핵심 기술의 유출과 직결된다”며 “이제는 애국심이나 조직 충성도에 기대어 인재를 붙잡아두는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이어 “최고의 인재에게는 그에 걸맞은 ‘기술 명장’으로서의 사회적 예우와 파격적인 직무 성과 중심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산업계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 빅테크의 고액 연봉은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밤낮없이 몰입하는 고강도 업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기도 한데, 국내의 경직된 근로 시간제가 오히려 인재들의 성취 욕구와 고소득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논리다.
머스크의 ‘태극기 인재 유치전’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강력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인재사관학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과 기업의 전향적인 임금 체계 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jmkim@news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