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조수원 기자 = “그저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온갖 풍파와 산전수전을 겪은 후 피아노 인생의 깊이와 삶의 서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5세에 피아노를 시작한 ‘1세대 피아니스트’ 서혜경(65)이 연주 60주년을 기념한 릴레이 콘서트를 연다.
서혜경은 29일 오후 서울 중구 푸르지오 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은 기술이 아니고 인생”이라며 “인생은 세월의 길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처음 피아노를 뛰어나게 연주했다고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 담겨 있을 수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60년 인생이 담긴 연주는 젊은 혈기의 피아니스트보다 훨씬 그 깊이가 깊을 수밖에 없다”며 “20대 연주하던 곡과 40년이 지난 지금의 연주는 같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혜경은 이날 간담회에서 홀로 두 자녀를 키웠던 일부터 유방암 투병 끝에 회복해서 다시 무대에 올랐던 일 등 자신의 인생을 고백했다. 그중에서 그는 세계 무대에 대한 꿈과 육아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했던 시절을 언급했다.
그는 “두 아이가 어려 교수로 직장 생활을 해서 밥벌이를 해야 했고 또 세계 무대는 놓치기 싫어서 안간힘 다했지만 엄마를 옆에 두길 바라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생활 터전인 미국과 아이들을 위해 경희대를 오가며 가르쳐야 했던 삶, 죽음으로 다가왔던 암 투병, 예술을 이해 못 하는 남편 등 가족으로 인한 수많은 상처 가운데서도 불꽃처럼 타올랐던 세계적인 무대를 갈망했고 놓치기 싫었다”며 “그 인생의 희로애락이 농축돼 피아노로 풀어내는 지금의 연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총 네차례로 준비한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는 작곡가 류재준이 편곡한 ‘녹턴·베토벤 협주곡 황제&브람스 협주곡 1번’, ‘녹턴·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생상스 협주곡’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생상스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서혜경은 특히 황제 협주곡에 대해 “50년은 연주한 곡이라 지금은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다 외우고 있다”며 “제 나름대로 겪은 산전수전이 다 들어있고 6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고 아버지가 (피아노를)시켜준 덕분에 감사한 마음이자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1980년 스무 살에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최고상(1위 없는 2위)을 받은 서혜경은 국내 연주자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후배 연주자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서혜경은 “콩쿠르가 영광의 정점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며 “입상은 시작일 뿐 피아노는 인생의 길이를 먹는 만큼, 경험을 담은 만큼 나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신비한 악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만족하는 금처럼 빛나는 연주는 사실상 금이 아닌 금박지고 댄스 초급 과정에서 칭찬받는 초보자(비기너)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자만하지 말고 상업적으로 몸값을 거래하는 것에 속지 말고 피아니즘을 향해 순례하는 초보자임을 직시하고 겸손했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에 조언했다.
서혜경은 60년간 변치 않는 자신만의 강점으로 ‘정열’을 꼽았다.
“피아노를 치면 너무 힘들지만 제 표현과 아픔을 담아서 연주할 때 관중들이 환호하는 게 행복해요. 그러면 하기 싫다가도 또 하게 되고요. 은행에 돈을 저금하듯이 연습하는 것만큼 무대에서 나오더라고요.”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오는 5월 7~27일 서울 용산구 일신홀에서 3차례, 같은 달 21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1차례 등 총 4회에 걸쳐 릴레이 콘서트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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