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조선 태조 때부터 만들어진 ‘서울 한양도성’을 완벽히 복원해야 한다는 민원에 서울시가 원형 복원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민원인 A씨는 시를 상대로 제기한 민원에서 “오세훈 시장이 돈의문 복원을 하겠다고 공약해서 돈의문은 당연히 복원할 텐데, 그러면 돈의문 복원할 때 한양도성 멸실 구간도 전부 복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외에도 한양도성 복원을 촉구하는 민원이 서울시에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민원에 서울시 문화본부 문화유산활용과는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완벽하게 원형을 재현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시는 “문화유산은 무엇보다 진정성을 가지고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멸실된 구간을 성급히 복원하는 것은 주의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며 “한양도성의 완전한 복원 문제는 정확한 고증을 거쳐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산 부족 문제도 있다. 시는 “복원 과정에서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사적 10호로 지정된 한양도성은 태조 5년(1396년)에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수차례 개축됐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인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년) 도성 기능을 수행했다.
한성부-경성부-서울시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한양도성은 좁게는 도시를 둘러싼 성곽과 성문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그 안의 공간까지 아우른다.
1000만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옛 성곽이 남아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한양도성은 한국의 고유 축성기법과 집단 장인 기술을 바탕으로 구축된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다. 4소문은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된 상태다. 한양도성은 전체 약 18.6㎞ 중 약 12~13㎞가 원형을 보존하고 있거나 복원됐다.
한양도성이 가장 많이 훼손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국권을 상실한 후 한양이 경성이라는 근대 도시로 바뀌는 과정에서 성벽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1907년 일제가 성벽처리위원회를 통해 동대문과 남대문 주변 성벽을 철거하면서 훼손이 본격화됐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양도성 보수 공사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지시에 의해 본격화됐다.
1961년부터 2년 간 숭례문 해체·수리 공사가 진행됐고 1962년에 남산구간 성곽 1500m가 보수된 데 이어 이듬해 인왕산 구간 2400m와 백악구간 2600m 성곽이 보수됐다.
박 대통령은 한양도성 복원을 통해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려 했다. 1970년대 문화재관리국은 국난 극복과 호국 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국방유적보수정화사업을 중점 추진했고 한양도성은 안보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국방 유적 중 하나로 여겨졌다.
1974년 7월 박 대통령이 한양도성 전면 보수를 지시함에 따라 같은 해 8월 ‘서울성곽 정화사업’이 추진됐다. 이 사업은 1975년 9월부터 1982년 6월까지 약 8년 간 총 공사비 41억원 이상이 투입된 대형 국책사업이었다. 이를 통해 도심부 멸실 구간을 제외하고는 한양도성의 약 70%가 복원됐다.
이후에도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세계유산등재와 진정성 회복을 위해 이간수문구간, 월암 근린공원구간, 회현 아동광장 구간, 여장복원 구간(인왕구역, 백악구역, 낙산구역, 목멱구역 등) 등에서 복원을 완료했다.
현재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주변(옛 시장공관) 위험구간 성벽해체복원공사, 인왕·백악곡성구간 성벽해체보수공사, 한양도성 보존을 위한 사유지매입 등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정치적인 목적 하에 추진된 복원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공사가 급하게 진행됨으로써 재료 선택과 시공 방법 문제로 한양도성의 진정성이 훼손됐다는 점이다.
서울상공회의소 구간을 비롯해 오간수문, 이간수문 등이 대표적인 문제 사례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완전 복원 자체에 집착할 경우 졸속 공사로 인해 한양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한양도성 복원 현황과 개선 방향- 진정성과 완전성 측면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문화재 보존을 위한 보수, 복원의 당위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 없이 상명하달식 정책 결정에 따른 국가 주도적 행정 집행 차원의 복원이 이뤄져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양도성 복원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고민과 연구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또 “원형에 대한 고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유적의 복원이나 과도한 정비는 지양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지식과 기술, 정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서든 과거의 원형이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현대의 기술이나 방법으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한양도성의 원형을 최대한으로 유지한 채 후대에 전승하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며 “유적의 복원에 막대한 예산과 공력을 투입하기보다는 한양도성의 추가적인 훼손을 방지하는 한편 현 상태에서나마 제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 적절한 보호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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