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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로잘린드’ 제니, K팝 女가수 제도 균열…제의 통한 젠(ZEN) 찾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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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자의 총명함에 문을 매달아 보세요. 그럼 창문으로 튀어나올 테니까요. 창문을 닫아 보세요. 열쇠 구멍으로 빠져나올 테니까요. 그걸 막아 보세요. 연기와 함께 굴뚝으로 날아 나올 테니까요.”(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 ‘뜻대로 하세요’ 중 로잘린드 대사)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겸 솔로가수 제니(JENNIE)는 ‘현대판 로잘린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잘린드는 제니가 최근 발매한 첫 솔로 정규 앨범 ‘루비(RUBY)’가 영감을 받은 영국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제니는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이 작품의 “온 세상은 무대일 뿐이고, 모든 사람은 단지 연극을 할뿐이다(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라는 대목에서 자신의 다양성 표현 가능성을 봤다. 앨범 커버에서 ‘큰 제니’가 연극 막을 젖혀 무대 속 ‘작은 제니’를 바라보는 장면은 그래서 탄생했다.

‘뜻대로 하세요’는 그런데 셰익스피어 희곡 중 젠더의 전복적 요소를 가장 잘 실험한 작품이기도 하다.

로잘린드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제도화하는 기존 가부장제 규범을 거부하고, 여성에게 투영된 부정적 편견을 비꼬거나 비판한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주어진 수동성을 거부한다.

제니가 자신의 영어 풀 네임인 ‘제니 루비 제인(JENNIE RUBY JANE)’의 중간 이름을 내세운 ‘루비’는 그녀의 정체성과 관련된 앨범이다. 제니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아 ‘자기 서사’를 분명히 했다. 단지 연극적 성격을 뛰어넘어 K팝 여성 아이돌 더 나아가 여성에게 덧씌워진 편견과 오해를 총명하게 벗어던지는 프로덕션과 콘셉트가 일품이다. 객석 상당수가 여성 관객들로 채워진 이유다.

로잘린드의 성향과 총명함을 갖고 있는 제니는 이번 앨범으로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제니가 15일 오후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펼친 첫 솔로 앨범 ‘루비(Ruby)’ 발매 기념 쇼케이스 형식의 콘서트 ‘더 루비 익스피리언스(The Ruby Experience)’엔 그녀의 지향성이 물성화된 순간들로 가득했다. 70분 남짓 동안 앨범에 실린 15곡을 모두 들려주며 정확히 자신을 표현하려 했다.

그룹 활동을 겸하는 솔로 가수들의 욕망 중 하나는 좀 더 나답고 싶다는 것이다.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한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자신을 표현하는데 정확하다.

화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에 가장 가까운 근삿값을 잘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제니의 앨범과 이번 무대는 자신이 아닌 것과 타협하지 않은 태도가 돋보였다.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 즉 ‘제니처럼’가 그 압축판이다. “터프한 소녀의 사운드를 맹렬한 새로운 스타일로 번역했다”(피치포크)라는 평을 받는 이 곡은 바일리 펑크(baile funk·브라질 식 힙합)와 퐁크(Phonk·트랩의 하위 장르)를 혼합한 메탈릭 비트가 인상적이다. 제니의 한국어와 영어 사이를 오가는 래핑은 자신다움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특히 “예스 아이엠 길티(Yes I’m guilty) 잘난 게 죄니”라는 라임 변형은 일종의 사자후로 카타르시스를 뿜어냈다.

이번 앨범의 또 중요한 곡은 제니라는 이름의 또 다른 운율 같은 ‘젠(Zen)’이다. 제니의 이번 앨범은 선(禪)으로 요약 가능하다. 선은 마음을 가다듬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불교 수행법을 가리킨다. ‘젠’은 이 선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영어 단어다. 제니는 ‘젠’ 직전엔 불교에서 기도나 명상 때 외우는 주문인 ‘만트라(mantra)’를 제목으로 내세운 곡을 발매했다. 제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만트라’ ‘젠’의 ‘수행 과정’을 거쳤다. ‘젠’엔 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 이미지를 등장시켜 통해 깨달음의 상태를 표현했다. 특히 노래 중간중간 불기둥이 솟구친 ‘젠’ 무대는 마치 제의(祭儀) 영역에 들어선 듯했다.

제니는 이번 솔로 활동으로 가창·춤도 늘긴 했지만 무엇보다 콘셉트·이미지를 창조해내는 회화적 재능이 일품임을 증명해나가고 있다. 쇼케이스 형식의 콘서트라서 그런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데 제약이 있었을 텐데, 아우라로 이겨냈다. 앞서 로스앤젤레스, 뉴욕에서 열린 공연에서 제니가 입은 의상에 대한 일부 선정성 시비는 정신과 내용의 기의를 톺아보지 못하고, 표면적인 기표에만 하릴 없이 매달려 생긴 결과다.

수많은 팬들이 모인 걸 바로 눈 앞에서 본 제니는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녀가 “괜찮으시다면 저를 위해 다 같이 소리 한번 질러봐 주실 수 있어요?”라며 뿅봉를 들고 온 블링크에게 함성을 요청한 이유다.

이날 정말 울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는 제니는 “제가 앨범을 내고 나서 많은 분들한테 너무 크고 무한한 사랑을 받아서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근데 오늘 이렇게 (꽉 차 있는 객석을) 제 눈으로 보니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제니는 약한 모습도 기꺼이 꺼내놨다. “제가 솔로 콘서트는 처음이라 좀 버벅대도 이해해 주세요. 저의 첫 단독 콘서트에 와주신 여러분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고요. 막상 여기 올라오니까 되게 부끄럽다”고 했다.

제니는 또한 콘서트가 너무 꿈만 같아 현실을 부정했다면서도 너무 많은 배움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뭔가 화려하고 모든 걸 멋있게 해내는 그런 모습 말고 이렇게 조금 바보 같기도 하고 버벅대는 솔직한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앨범이라 모든 게 다 낯설고 처음 시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건 팬들의 사랑을 부르는 만트라(기도·명상 때 외는 주문)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연달아 들려준 네 곡은 제니와 세상 간 관계 맺기 은유와 같았다. 관계 설정의 환기 ‘F.T.S.’, 여과 없는 자신과 마주하는 ‘필터(Filter)’, 양가적인 감정의 ‘스타라이트(Starlight)’, 영겁(永劫)의 인연을 노래한 ‘트윈(twin)’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고, 그걸 좋아해주는 팬들이 있을 거라는 통찰의 연쇄작용이었다. 왜 공연 타이틀에 ‘익스피리언스'(경험)을 붙였는지 납득이 됐다.

제니는 개인의 특별함을 마치 행위예술가처럼 강단 있게 밀어붙이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아티스트라는 말의 용법이 너무 진부해진 시대에 제니에게 아티스트라는 말을 붙이면 강인한 단독자의 존재감을 깎아버리는 거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녀야말로 아티스트다. 스타들의 스타로 통하는 만큼 그룹 ‘뉴진스’, 배우 김지원·정호연 등 톱 여성 스타들이 공연장에 대거 운집한 것도 화제였다.

제니의 이번 앨범은 성적, 비평 측면에서 골고루 성과를 내고 있다.

이날 공개된 영국 오피셜 앨범 톱100 최신 차트(14~20일)에서 3위로 데뷔했다. 특히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 정국 첫 솔로 앨범 ‘골든(Golden)’과 해당 차트 K팝 솔로 최고 순위 타이를 이뤘다. ‘루비’는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선 7위로 데뷔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위를 인정 받는 미국 대중음악 평론 전문지 ‘피치포크(Pitchfork)’는 제니 ‘루비’에 대해 “다재다능함과 매력으로 소녀 사운드를 강인한 폭풍우 같은 새로운 스타일로 옮겼다”며 평점 7.1점을 매겼다.

10점이 만점으로 비교적 높은 숫자다.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정규 7집 ‘이터널 선샤인'(2024)과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 정규 3집 ‘히트 미 하드 앤드 소프트(HIT ME HARD AND SOFT)'(2024)이 받은 평점은 각각 7.2점과 6.8점이다. 특히 역대 K팝 앨범 중 여덟 번째로 높은 평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315_0003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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