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힘있게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남성 백조들, 극강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군무.
19일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인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근육질의 백조들은 남성미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날렵하면서도 힘 있는 군무를 추는 백조들의 등에서 흘러내린 땀이 조명 아래 반짝였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1995년 영국 새들러스 웰즈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2003년 처음으로 한국 관객을 만났고 이번이 6번째 내한이다. 지금까지 10만명이 넘게 이 작품을 관람했을 정도로 기대작이다.
매튜 본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작품을 만들 때 항상 관객을 생각하며, 단 한번도 발레 공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내 작품에 빠져들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발레를 처음 본 이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 ‘매튜 본의 스토리텔링은 정말 센세이셔널하다. 처음 접한 발레로 왜 매튜 본인가를 일깨워줬다’ 등의 관람 후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는 남성미를 제대로 보여준 백조들의 군무와 함께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매튜 본의 작품을 두고 ‘댄스 시어터(Dance Theatre)’, ‘댄스 뮤지컬(Dance Musical)’라 하는 이유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작품과 스토리가 다르다. 마법에 걸려 밤에는 백조로 변하는 공주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유악한 왕자와 그가 갈망하는 자유와 힘의 상징인 ‘백조’ 사이의 관계를 그린다.
왕자는 여왕(어머니)를 이어 언젠가는 왕위를 계승해야 하지만 매우 연약하고 왕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신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늘 관심과 사랑을 갈망한다.
왕자가 온몸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며 여왕을 안으려 하지만 그녀가 무뚝뚝하게 아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장면에서는 연민을 자아낸다. 왕자는 어머니가 여자친구마저 왕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반대하자 좌절한다.
방황하던 왕자는 술에 취해 바를 찾게 된다. 그 곳에서 우연히 여자친구를 본 왕자는 사랑하던 여자친구마저 왕위를 노리는 비서 계략에 의해 접근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살을 결심한다. 유서를 남기고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왕자는 백조를 만난다. 백조는 왕자가 그토록 갈망했던 힘과 카리스마를 지닌 존재다.
왕자는 한 마리의 남성 백조와 파드되(2인무)를 추다가 서로를 껴안는다. 백조로 부터 받는 위안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장면이다.
이후 왕자는 왕실 무도회에서 백조와 똑같이 생긴 ‘낯선 남자’와 맞닥뜨린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유혹하는 모습을 본 후 왕자는 큰 혼란에 빠지고, 결국 질투심에 어머니에게 총을 겨눈다. 이 사건 후 심신이 쇠약해진 왕자는 시름시름 앓다가 백조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에는 원작 발레와는 달리 코믹한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왕실 직원이 목줄을 채운 강아지와 함께 등장하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끼던 웰시코기를 닮은 개로봇이다.
또 왕자의 여자 친구가 몸을 비틀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접근하지만 왕자가 밀어내는 장면, 핸드폰 벨이 크게 울려 객석을 쳐다보지만 여자친구 핸드폰이라는 설정, 여자친구가 발레극을 관람하다 골룸처럼 생긴 괴물을 보고 머리를 마구 때리는 장면 등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연극 혹은 뮤지컬 형식을 차용했지만 발레작품답게 아름다운 파드되가 수차례 등장한다.
남성 백조를 닮은 ‘낯선 남자’가 검은 옷을 입고 3명의 여성들과 차례로 파드되를 추거나, 남녀가 쌍을 이뤄 군무를 추는 장면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왕실 전체가 추는 탱고 느낌의 군무가 보여주는 웅장한 춤사위도 인상적이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오는 2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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