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은하수를 타고 무지개를 건너 / 사랑하는 그대 꿈속으로 갈까 / 반짝이는 별을 모두 따다 줄까 ♪♬”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2025) 3화에선 마치 고래처럼 제주 앞바다를 가로질러 헤엄쳐 오는 ‘양관식'(박보검 분)과 그런 그를 울면서 바라보는 ‘오애순'(아이유 분)의 모습이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귀여우면서도 애절하게 확인하는 이 대목에선 가수 장덕(1961~1990)의 ‘얘얘!'(1988)가 흘러나온다.
애순이 딸 금명(아이유 분 / 아이유는 극 중에서 애순·금명 1인2역을 맡았다)의 “쳐들어오는 운명을 막을 수 있었을까. 운명이란 원래 그추룩 요망진 거였다”라는 내레이션이 겹쳐지는 순간 이 노래와 장면은 완성된다.
상대방의 곁을 떠나야 자신들의 첫사랑이 살 수 있다고 저마다 믿은 두 사람이지만, 애타는 심정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제주 바다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 같은 관계가 될 뻔했지만, 애순의 간절한 울부짖음을 육지로 떠나는 배 위에서 들은 관식은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주는 오작교 없이 무쇠 같은 몸으로 그녀 앞에 당도한다. 배를 돌리지 못하면 바다에 뛰어드는 남자인 것이다.
요사스럽고 망령됐다는 뜻의 ‘요망(妖妄)’이 아닌 ‘야무지고 똑똑하다’란 뜻의 제주어 ‘요망진’에 가까운 이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그렇게 가족들의 반대에도 야무지다.
노래가 흘러 나온 시대 배경인 1968년이 아닌 1988년 장덕이 발표한 솔로 정규작 ‘얘얘-골든 앨범 vol.2′(5집)에 실린 ‘얘얘!’는 그럼에도 극 중 장면과 찰떡이다.
장덕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소녀와 가로등’의 작곡가로서, 가수 진미령과 함께 ‘서울가요제’ 무대에 올라 ‘천재 소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작곡과 노래, 연기까지 다방면에서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했다. ’80년대 아이유’로 통하는 이유다. 특히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귀한 시대에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오빠 장현(1956~1990)과 함께 결성한 듀엣 ‘현이와 덕이’는 ‘한국판 카펜터스’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님 떠난 후’ 등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에 큰 인기를 얻어오던 중, 1990년 29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얘얘!’는 장덕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다소 튀는 곡이다. 그룹 ‘김트리오’의 리더 김파가 멜로디를 붙이고, 장덕이 노랫말을 지었다. 1950~60년대 미국 로큰롤 리듬, 드럼 비트를 기반 삼아 흥겹다. 곡의 통통 튀는 느낌이 관식·애순의 좌충우돌 사랑과 맞물린다.
기존 우수에 젖은 자신의 노래 작법과 정서가 달랐음에도, 장덕은 경쾌한 가창으로 곡을 살린다. 김파의 코러스는 바다의 넘실거라는 파도처럼, 설렘을 더한다.
후배가수들의 리메이크도 이어졌다. 2009년 인디 걸그룹 ‘플레이걸’이 펑키하게, 2014년엔 팝 밴드 ‘에이템포’가 담백하게, 2021년엔 여성듀오 ‘레인보우노트’가 시티팝 풍의 신스팝으로 재해석했다. 아이유 팬덤 유애나 사이에서도 일찌감치 아이유가 이 곡을 그녀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시리즈에 실어줬으면 하는 곡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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