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심청이를 ‘효(孝)’에 국한해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신작 ‘심청’ 제작발표회에서 극본과 연출을 맡은 연출가 요나 김은 “심청을 유교적 가치관에 초점을 둔 게 아니다”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20여년 간 활동 중인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은 심청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전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캐릭터”라고 강조했다.
그는 “눈 먼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캐릭터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 비극은 물론, 독일의 모든 동화에도 그런 인물이 많다”며 “심청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 전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심청이 굳이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다기보단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내놓을 수 있는, 그리고 이상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며 “아버지는 가부장 사회에서 권력이 센 사람이지만 눈이 멀었다. 우리 사회에 현실 인식이 잘 안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서로 돕다 보면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결국 ‘심청’이 부녀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나 김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연출로 호평을 받으며 한국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올해 8월과 9월 전주와 서울에서 각각 초연하는 신작 ‘심청’ 연출을 맡으며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에 도전한다.
그는 ‘심청’을 창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심청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 밑에 전 세계 언어로 통하는 ‘판소리 테아트’라고 썼다”며 “그만큼 경계선에 서서 장르의 규정을 짓지 않고 싶다. 공연이 다 끝나면 장르가 새롭게 생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 생겨도 괜찮다”고 밝혔다.
아울러 ‘심청’에서는 한복을 입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의상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유나 김은 “신작 ‘심청’은 어느 나라 누가 보아도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전통과 현대를 모두 관통하는 유니버셜한 의상을 만들고 싶었다”며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굳이 한복을 디자인하는 분이 한복을 무대에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외국인) 오페라 의상 담당자가 의상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청’의 의상디자인을 맡은 팔크 바우어는 “한복은 전통적인 옷이다. 다양한 레이어와 색깔 및 형태가 있다”며 “한복 색상, 소재가 무엇인지에 따라 한복 느낌이 달라진다. 현대적인 옷을 입던 소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무대디자인을 맡은 헤르베르트 무라우어는 “어제 궁궐을 방문했는데, 한복을 빌려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며 “(파주에 있는) 의상 아카이브 한복과 궁에서의 한복을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질 차이가 크고, 길거리에서 보는 한복은 패션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부터 ‘심청’ 주인공 공개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는 유나 김은 오디션 응시자들의 소리를 듣고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소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들으면서 3시간 동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제 감각들이 깨어나는 경험”이라며 “심청 작품을 통해 귀향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심청’은 창극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 ‘리어’ 등 다수의 창극 음악을 맡아온 한승석이 작창을,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 음악을 넘나드는 작곡가 최우정이 작곡을 맡았다.
이와 함께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과 축제에서의 작업을 비롯해 유나 김과 꾸준히 협업해온 독일 창작진이 무대미술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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