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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얼마나 아시나요”…천주교 박해 역사 품은 ‘박물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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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김정하 인턴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인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 관련 유물들이 숨겨진 근현대사박물관이다. 명동성당은 19세기 유리화를 비롯해 20세기 성화, 초상화, 조각상까지 다양한 근현대 예술품들로 가득하다.

전문가 해설을 들으며 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2025년 상반기 명동대성당 도슨트 투어’가 진행 중이다.

김진화 도슨트는 지난 2일 올해 첫 명동대성당 도슨트 투어를 시작하며 “명동성당에 와서 그 특징을 알게 되면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유럽식 고딕 성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김 도슨트에 따르면 유럽지역 성당 내 작품들은 성경 내용이나 성경 인물을 주제로 표현한 게 대부분인데, 명동대성당의 예술작품들은 한국 천주교회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명동성당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유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 천주교 역사의 결정체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은 초기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공동체가 있던 명례방 근처, 최초 조선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귀국해 활동하던 돌우물골(현 중구 소공동) 인근에 자리했다.

명동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1842∼1896) 신부가 설계하고 파리외방선교회의 재정지원으로 세워졌다.

조선교구 제7대 교구장 블랑(1844-1890) 주교가 시작한 토지매입은 1882년 시작됐으나, 성당 터가 조선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영희전과 가까이 있어 풍수지리상 곤란하고 궁궐이 내려다 보인다는 이유로 조선 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성당 건설에 난항을 겪었다. 이후 1887년 한국과 프랑스 간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프랑스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1892년 착공됐으며 1898년 마침내 완공됐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 벽돌로 쌓은 고딕식 성당으로 평면은 십자형이다. 본당 높이는 23m, 탑 높이는 45m에 달한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20여종에 달하며 색깔은 적색과 회색 2종류다. 이들을 적절히 사용해 아름다운 건축물로 완성된 이 성당은 1977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됐다.

김 도슨트는 “명동대성당의 경우 축성 당시 자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큰 돌을 구하기 어려워 벽돌로 짓게 됐다”며 “벽돌로도 고딕의 세부적 요소들을 잘 살린 성당”이라고 설명했다.

또 “명동대성당은 본당 설립 후 한국 천주교 신앙의 중심이 되어온 곳으로, 오랜 박해에서 획득한 신앙의 자유, 소외당하고 가난한 민중의 안식처,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천주교 초기 박해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작품은 명동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중앙에 있는 청동 중앙문이다. 조각가 최의순 작가가 1987년 저부조 기법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윗부분은 한국 땅에서 최초로 미사를 집전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평신도 단체 명도회 회장이자 최초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편찬한 정약종을 표현했다. 중앙은 조선에 온 프랑스 선교사들과 교우들의 피난 행렬이다. 하단에는 박해받던 시절에도 소외된 사람들을 지킨 초기 천주교회 사회활동을 보여준다.

김 도슨트는 상복으로 표현된 프랑스 선교사 옷차림에 대해 “당시 조선에서 상복을 입은 자와는 상대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지 않아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아 서양 선교사들은 (상복으로) 눈에 띄는 외모와 언어적 문제를 감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근현대 유물들의 보고(寶庫)
오는 20일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날 성당에는 기도하는 신자들로 가득찼다. 성당 정면의 제대 위쪽으로 길게 뻗은 다섯 개의 긴 세로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성당 안을 환히 비췄다.

김 도슨트는 “명동 대성당은 가로축보다 세로축이 긴 라틴 십자형으로 되어 있다”며 “세로축 앞쪽을 성당 건축에서 앱스라고 하는데 앱스에 스테인드글라스와 여러 성화가 있고 트란셉트라는 가로축 양쪽에도 있다”며 참가자들을 성당 안으로 안내했다.

제단 중앙 성모자상 좌우로 보이는 ’14사도화’는 초기 한국 천주교회 성미술 개척자인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화가 장발(1901~2001)의 1926년작으로 전례공간에 설치된 국내 최초 제단화다. 12제자에 사도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가 포함됐다. 사도들 얼굴은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처럼 보이지만 캔버스에 그린 유화다.

제대 뒤편 다섯 개 긴 세로 창은 로사리오(묵주기도) 15단을 담고 있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 중 15가지 중요한 사건인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가 그려져 있다. 그림 순서는 맨 왼쪽 위부터 아래로 진행되며, 각 그림 하단에 로마 숫자로 순서가 표기되어 있다.

입구 위쪽에 있는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기념’ 유리화를 뒤로 하고 양측 회랑을 따라서는 유리화 ‘신자석 창’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천장 가까운 곳에는 ‘광창’이 설치되어 있다. 트란셉트 양쪽에는 유리화 ‘예수와 열 두 사도’와 ‘아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가 각각 배치돼 있다.

유일하게 현대에 제작된 이남규 작가의 1989년작 ‘제44차 세계 성체대회 기념’ 유리화를 제외하고 모든 유리화 작품은 19세기 유럽 유리화 표현양식을 수용한 작품이다. 프랑스 유리 제작사 제스타 공방이 제작했다.

김 도슨트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으로 쓴 성경 또는 가난한 이들의 성경이라 했다”며 “예전에는 많은 이가 글을 읽을 줄 몰라 이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그림을 통해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다.

성경 내용은 유리화가 보여준다면 한국 천주교 역사는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와 ’79위 복지화’ 등 회화 작품들이 보여준다.

김태 작가의 1984년작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는 교회 창설 후 사람들이 명례방에 있는 김범우의 집에 모여 교리 공부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김 도슨트는 “큰 갓을 쓴 양반, 작은 갓을 쓴 중인, 패랭이 모자를 쓴 상인, 흰 수건 두른 평민까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분과 관계없이 모여 있다”며 “조선시대 때 상상할 수가 없는 모습이지만, ‘하느님 사랑 안에 모두 한 형제’라는 평등사상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79위 복자화’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바티칸에서 거행한 한국순교자 79위 시복식을 기념하려고 다음 해에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 순교화다. 외국인 화가라는 사실 외에는 화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작품이다.

그림 가운데 제2대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파리 외방 전교회의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옆에 붉은 영대를 걸친 김대건 신부가 무릎을 꿇고 있다.

김 도슨트는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 성인화지만 외국 작가에 의해서 제작되어 얼굴, 용모, 복식 표현에 어색한 부분이 있다”며 “이후에 완성된 순교 성화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 김대건 신부, 세례자 이벽, 명례방 집 주인이었던 중인 김범우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을 묘사한 부조 작품들, 성모 마리아상, 예수상, 사형 선고를 받은 예수를 표현한 조각상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성당 안팎에 숨겨져 있다.

한 참가자는 “한국 천주교가 100년 이상 박해를 받았음에도 조선시대에 왕실의 압박을 딛고 일어나 제일 높은 이곳,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명동성당이 세워졌다는 설명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며 “명동성당에서 경복궁은 물론 서울 전체가 다 보였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지난 2023년부터 매년 명동대성당 도슨트 프로그램을 상반기와 하반기 나눠 진행한다. 올 상반기 프로그램은 6월 21일까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무료로 진행된다.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 모두 신청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414_0003138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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