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현아 기자 = 일상 생활에서 일반 화폐 대신 결제·송금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하면서다. 지금까지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어려웠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송금의 편리성뿐 아니라 자국 통화 주권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착수한 상태다. 한국도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월말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300억달러(약 3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씨티그룹과 스탠다드차타드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오는 2028~2030년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약 2200조원~28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인 거래가 확산되면서 관련 업계에 대한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USDC의 발행사인 서클은 뉴욕증시 상장 첫날인 지난 5일(현지시간) 공모가(31달러) 대비 168% 폭등한 데 이어 3거래일 연속 상승 랠리를 이어갔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과 같은 다른 가상자산과는 달리 법정화폐나 실물 자산에 가치가 1대 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비교적 안정적인 가상자산이다. 예컨대 스테이블코인 1코인당 1달러, 1코인당 1000원식으로 가치가 고정되는 식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은 ‘테더(USDT)’와 ‘서클(USDC)’이다. 모두 달러 가치에 연동된 코인으로, 이들 코인이 글로벌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향후 5년간 연평균 50% 안팎의 고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며 “지금은 주로 암호화폐 거래용 유동성으로 쓰이지만 향후 국제 송금, 전자상거래 결제, 증권 결제·청산 등 광범위한 영역으로 활용범위가 넓어질 수 있고,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신흥국에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대안 결제 수단이나 달러 저축 수단으로 쓰일 수 있어 잠재력이 크다”고 내다봤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넘나드는 빠른 송금과 낮은 수수료, 실시간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최근 미국 상원이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 인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스테이블코인 산업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상원은 지니어스 법안의 본회의 표결만을 남겨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지난 10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하고 나서면서다. 법안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고, 디지털 자산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행 요건은 자기자본금 5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법인에 한해 발행할 수 있도록 해 당초 논의됐던 50억원 수준에서 대폭 완화됐다.
법안이 통과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해온 은행권을 비롯해 비은행권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핀테크 업계에서도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추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KB국민, 신한, 우리, NH농협, IBK기업, Sh수협은행과 금융결제원은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와 함께 지난 4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하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공동 연구를 추진 중이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도 오픈블록체인·DID협회 회원사로 참여하게 됐다. 공동 전선에 나선 은행들은 국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필요한 검증 사업을 추진하고, 해외 사례를 참고해 발행 방식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제도 정비가 시작됐다”며 “제도화 이후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결제·금융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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