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도 못했습니다.”
일본 영화 ‘국보’는 지난 6월 현지에서 공개돼 최근 관객수 1000만명을 훌쩍 넘겼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이제는 일본 젊은 세대에게도 낯선 문화인 가부키,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화법과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매출액 약 142억엔(약 1400억원)을 기록, 일본에서 공개된 영화 중 역대 2위 흥행작이 됐다(1위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2-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173억엔).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진출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21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상일(51) 감독은 흥행 관련 질문을 받자 한국말로 “잘 모르겠다”고 답하며 웃었다. 그는 “흥행에 관한 것은 여러분께 분석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국보’는 가부키 배우에 관한 얘기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기쿠오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가부키 명문가 집안에 편입되고, 가부키 집안의 적자인 슌스케와 함께 가부키를 배우며 예술가로 거듭난다. 이 작품은 기쿠오의 반세기 삶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우정과 갈등, 존경과 질투, 연민과 애증이 오가는 슌스케의 관계를 그린다. 요시다 슈이치 작가가 2017년부터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 감독은 앞서 ‘악인'(2011) ‘분노'(2016)를 요시다 작가 소설 기반으로 만든 적이 있다.
“가부키 소재 영화는 80년 전에 미조구치 겐지 감독님이 만든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가부키는 영화로 보는 게 아니라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게다가 이 영화는 러닝 타임이 3시간에 가깝고, 요즘 많은 일본인에게 가부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요시자와 료, 와타나베 켄 등 잘 알려진 배우가 자신의 인생을 거고 가부키 배우의 삶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이 감독은 ‘국보’를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 그 혈통을 이어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 등 인간이 짊어지게 되는 업에 관한 영화라는 얘기였다. “물론 이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은 아닐 겁니다. 고도의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의 풍경이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그 풍경을 통해 우린 감동을 받게 되죠.”
‘국보’는 이 감독이 말한대로 예술가와 혈통 두 가지 축이 떠받친다. 가부키라는 소재 때문에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것 못지 않게 혈통에 관한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야쿠자 집안 출신 가부키 배우인 외부자 기쿠오의 삶을 보고 있으면 당연하게도 자이니치 3세인 이 감독의 ‘피’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감독은 이런 관점에 대해서도 웃으며 “제 피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상상의 맡기겠다”고 한국말로 답했다.
“어쨌든 제가 계속해서 관심 가지고 있는 주제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사회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을 저는 계속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데는 제 아이덴티티가 당연히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국보’와 제 정체성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 싶습니다.”
연출 방식이나 스토리가 다르고 화법 역시 상이하나 ‘국보’를 보고 있으면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전통극이 소재라는 점, 예술가로서 삶과 개인의 삶을 교직하며 서사를 밀고 나아간다는 점은 분명 공통점이다. 이 감독 역시 ‘패왕별희’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제 영화는 많은 감독과 그들의 영화에 영향을 받았죠. ‘국보’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제가 학생 때 무척이나 인상 깊게 본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왕별희’가 ‘국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아닙니다만 제가 그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이 분명 제 영화에 남아 있을 겁니다.”
최근 영화 만들기가 어려워졌다는 건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단적인 예로 일본 실사영화 역대 흥행 순위를 보면 10위권 내에 2020년대 만들어진 영화는 ‘국보’ 1편 뿐이다. 2010년까지 범위를 넓혀도 ‘국보’ 포함 3편이다. 이 감독은 ‘국보’의 흥행에 많은 일본 영화인이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다”면서도 “이런 현상(새로운 흥행작이 나오는)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계속 고민해야 할 겁니다. 감독, 배우, 프로듀서 등 영화인들이 각자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어떻게 하면, 무엇을 찍으면 관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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