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웹툰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신진 창작자에게 데뷔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산업이 복잡해지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실전형 교육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창의인재동반사업’은 신진 창작자 육성의 ‘모범 모델’로 꼽힌다.
지난 18일 세종대학교에서 만난 정찬(본명 정회주) 작가와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전공 교수는 창의인재동반사업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경험한 인물들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의 원작 웹툰을 그린 정 작가는 창의인재동반사업 교육생(멘티) 출신이고, 한 교수는 플랫폼기관 수행책임자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정 작가는 “학교는 그림을 가르치지만, 시장에서 작가로 살아남는 법은 다르다”며 2013년 창의인재동반사업 교육생 시절을 떠올렸다.
한 교수 역시 “신진 작가가 생태계에 홀로 진입하면 너무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 그 시간을 줄여주는게 이 교육의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멘토링의 진화…멘토가 멘티 될수 있는 열린 교육
정 작가가 창의인재동반사업에서 처음 만난 멘토는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 ‘몽홀’의 장태산 작가다.
“장태산 선생님께선 어떻게 작가로 살아냈는지, 어떤 마음으로 꾸준히 가야되는지’를 현실적으로 알려주셨어요. 아이디어보다는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강조해주셨죠.”
당시의 배움은 웹툰 작가로서의 길에 지침이 됐다.
한 교수도 학교와 창의인재교육사업의 교육은 다르다는 데 자부심을 보였다.
“웹툰 작가로 데뷔하고 싶어도, 그걸 목표로 집약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전문 학과에서도 그런 커리큘럼은 잘 없거든요. 그 역할을 하는 게 창의인재사업의 플랫폼 기관입니다.”
올해 창의인재동반산업에는 영상, 웹툰·스토리·애니메이션, 게임, 음악·공연 등 4개 분야 중심으로 총 16개 플랫폼 기관이 선정됐다. 각 기관은 분야별 멘토단을 구성하고, 교육생들과 매칭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세종대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10차례 플랫폼 기관으로 참여해 프로그램 운영 노하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한 교수는 “멘토링에 대한 개념도 시간이 지날수록 혁신된다”며 “멘토도 반복적으로 같은 사람을 선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멘토 구성도, 멘토링 방식도 보다 다양화하고 있다.
한 교수는 “멘토 중에는 시나리오 중심의 작가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생태계 별로 각각의 멘토가 나뉘어져 있다”며 “한 명의 멘티가 자기 담당 멘토에게만 멘토링을 받는 게 아니라, 다른 멘토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전체 멘토가 한 명의 멘티를 도울 수도 있다. 그런 다양한 방법들도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 역시 “멘토마다 장점이 다 있기 마련이다. 여러 멘토에게 돌아가며 배우면서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전형 교육의 힘…창작에만 몰두하는 ‘지옥 캠프’
세종대 학과 내에서 진행해오던 ‘만화창작 지옥캠프’도 창의인재동반사업 프로그램에서 실시되고 있다. 멘토와 멘티가 며칠간 합숙하며 오직 창작에만 몰두하는 방식이다.
한 교수는 “웹툰 작업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외롭다. 나 혼자 싸워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나만 이렇게 힘드나, 나만 속도가 안나나’하고 고민하게 되는 데 가서 보면 다들 그렇다. 그런 걸 공유할 수 있는 작가들이 함께하는 경험, 거기에 멘토가 같이 와서 계속 맨토링을 해준다. 멘티들끼리도 멘토링이 된다”고 말했다.
정 작가에게도 청강대에서 열렸던 ‘지옥캠프’의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 말씀처럼 여러 작가들이 모이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게 좋았습니다. 서로 고민이나 노하우도 나누다 보면 작업의 프로세스도 더 잘 잡히거든요. 또 선생님들께서 바로 옆에서 붙어서 정확히 짚어가며 이야기해주시니 디테일한 작업도 더 할 수 있었어요.”
교육생들은 6~7개월의 과정동안 자신의 작품을 완성한다. 종료 시점에는 성과보고회를 열고 주요 플랫폼, 에이전시 관계자들에게 직접 작품을 소개한다.
한 교수는 “쇼케이스를 통해 60~70%의 교육생이 제안을 받고, 작품을 변형하거나 디벨롭해 연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 작가도 이 쇼케이스에서 여러 제안을 받았고, 2014년 ‘고삼무쌍’으로 데뷔하는 발판이 됐다.
한 교수는 “멘토링을 받아들일 준비된 멘티가 좋은 멘토를 만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집약적으로 받아 기회를 잡으면, 우리나라 차원에서도 좋은 작가 한 명이 생기고, 그 작가를 통해 좋은 이야기가 IP(지식재산)로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작가도 “초반에 이 작품이 통할지 아닐 지에 대해 혼자 고민할 때가 굉장히 많은데, 그 고민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점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인 거다. 멘토님의 말씀을 듣고 ‘난 내 뜻대로 갈래’가 아니라 ‘이런 방향도 있구나’라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순환의 시작…웹툰 생태계를 만드는 사람들
창의인재동반사업은 ‘교육’에 그치지 않고 창작자가 콘텐츠 생태계에 안착하도록 돕는다. 실제로 올해 세종대 멘토 8명 중 2명은 과거 멘티 출신이다.
한 교수는 “한 명은 청강대 교수가, 다른 한명은 AI 전문가가 됐다”며 “연재 작가 뿐 아니라 업계 전반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역할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자신이 몰랐던 능력을 발견해 커 나가는건 한국 웹툰 시장도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또 “(사업 참여) 초창기에는 새로운 작가가 새로운 IP를 만들어 낼 때 참 좋았다. 이제는 이렇게 각각의 역할을 구축해 나가면서 (한국 웹툰의) 펀더멘탈을 더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웹툰은 이제 하나의 장르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글로벌 시장을 키우는 핵심 지식재산(IP)로 자리매김했다.
정 작가는 “이제 국내 시장은 어떻게 보면 포화 상태”라며 “이제는 글로벌하게 나갈 수 있는 작품을 매칭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서사들을 표현할 수 있다.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작품 보다 해외에서 통할 수 있는 만화를 만들 수 있게, 견문을 넓혀주는 것도 나아갈 지향점이 아닐까한다”고 했다.
한 교수도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연재하다가 인기를 얻으면 해외에 나가는 수순이었다. 하지만 북미, 유럽, 남미 등 각 국가에 맞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 이유를 국내 작가가 알아야 이에 맞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정 작가의 생각에 공감했다.
정 작가에게 창의인재동반사업에 대한 애착은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지금도 여전하다.
“다시 멘티로 참여해보고 싶어요. 기존 작가들도 항상 길을 헤매기 마련이거든요. 완성형이 아니라 배워 나가야 하는거죠. 젊은 분들에게 기회를 더 주는 게 당연하지만, 해외로 가기 위해서는 저희도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 더 전문적인 인재 발굴 프로그램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지원해보고 싶습니다.”
(공동기획: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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