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판소리와 헤비메탈이 결합한 사운드로 전투 장면을 구현하고, 얼음조각 퍼포먼스로 빙하의 녹아내리는 순간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동시대 공연예술이 과학기술과 기후위기, 방관과 폭력, 역사적 서사를 어떻게 감각적으로 번역되는지 보여주는 신작들이 관객을 찾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7일 서울 대학로예술국장에서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이하 창작산실) 3차 라인업을 공개했다. 무용·음악·전통예술·연극 등의 장르로 풀어낸 작품 7편이 무대에 오른다.
무용 ‘MELTING(멜팅)’(2월12~14일)은 기후 위기로 녹아내리는 빙하를 모티브로, 고요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파괴의 과정을 신체 움직임으로 형상화한다. 백연 안무가는 “빙하의 녹아내림은 자연의 시선에서는 절규이자 쓰나미”라며 “관객이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얼음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시각적 장치가 더해진다.

‘Sleeping Beauty, AWAKEN'(2월 6~8일)은 고전 발레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유전자 조작이라는 SF적 설정으로 비틀어,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를 묻는다. 완벽한 공주와 대리모의 대비 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감정이 지닌 회복의 힘을 발레로 풀어낸다.
음악과 전통예술 장르에서는 소리의 경계를 확장하고 전통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이어진다.
‘적벽'(2월 27~28일)은 판소리 ‘적벽가’를 록 사운드로 재해석한 무대로,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가 전장 속으로 관객을 소환한다. 이일우 음악감독은 “판소리 원작은 전투 자체보다 병사들의 해학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이번 공연은 ‘장수들의 웅장한 전투’ 느낌을 살리기 위해 헤비메탈 사운드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름다운 재즈 코드 대신, 디스토션(distortion), 찢어지는 노이즈, 신디사이저 등을 섞어 전쟁터의 비명과 폭풍 같은 소리를 구현했다. 관객에게 실제 적벽대전 속에 있는 듯한 공포와 현장감을 주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음악 ‘지박컨템포러리시리즈 Vol.25 – 휴명삼각'(2월 6~8일)은 현대음악·민요·재즈를 삼각 구조로 엮어 익숙한 소리를 낯선 감각으로 재구성한다.
‘비-음악적 비-극들’ (2/12~14)은 음악과 연극의 경계를 해체하며 ‘음악극’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연극 ‘멸종위기종'(2월 6~15일)은 ‘본다’는 행위가 어떻게 가치 판단과 생존의 기준이 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황정은 작가는 “이 시대에 진짜 경계에 서 있는 존재들은 동물이다. 특히 멸종위기종에 (인간이) 시선을 주는데 시선을 받는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나”라고 되물으며 “무언가를 보호하겠다는 시선이 위협이 되고, 중요하다고 보는 시선이 판단이 되면서 시선의 주체라고 생각했지만, 객체가 되버리는 양면성을 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정 대상을 중요하다고 쳐다볼 때, 시선이 쏠리지 않은 뒷면의 존재(종 다양성)은 사라진다. 시선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한쪽으로 몰리는 현상이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사라지는게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했다.
‘세게, 쳐주세요'(2월 27일~3월 1일)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출발점으로, 일상적 무관심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묻는다. 무용·연극·음악이 결합된 총체극 형식으로 관객의 감각을 직접 자극한다.
이은경 안무는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어 ‘세게 쳐버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며 “나쁜 사람 캐릭터를 구상하다 보니,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성실한 사람’이 타인에게 무관심할 때 가장 나쁜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이것이 한나 아렌트과 연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작산실’은 제작부터 유통까지 단계별 지원을 통해 연극, 창작뮤지컬, 무용, 음악, 창작오페라, 전통예술 등 기초 공연예술 분야의 우수 신작을 발굴하는 지원사업이다.
18회 창작산실의 전체 공연 일정과 상세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와 SNS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티켓 예매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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