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AI시대, 인간과 AI가 합작한 ‘초현실주의 그림’이 프랑스에서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AI 아트 그룹 오비어스(Obvious) 아시아 첫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AI가 인간의 뇌안을 들여다보고 그린 그림”이다.
10일 한국 기자들을 만난 오비어스는 “처음 AI와 함께 한 작품을 발표했을 때도 창의성과 저작권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한국에서도 같은 질문들을 받고 있다”며 “이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AI 생성 이미지가 저작권으로 인정받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의견을 계속 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작품은 AI의 창조물로 새로운 아트워크를 창조했다는 것”이라며 “인간이 상상한 이미지를 AI로 시각화한 것이 여타 ‘AI 아트’와의 큰 차별화”라고 설명했다.
오비어스는 “AI는 사람의 손과는 어떻게 다를까?’, ‘사람의 상상을 현대기술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이 작업은 “AI기술로 어떻게 보여지는 지가 포인트”라고 했다. 설명으로는 어렵게 들리지만 “작품에 붙은 작품 설명이 그림 탄생의 배경을 알려준다”고 작업 과정에 대한 힌트를 줬다.
“인간의 뇌파와 AI의 결합으로 나왔다”는 그림은 ‘초현실주의 풍’으로 현란하고 기괴하며 독특함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오비어스는 “모든 작품은 특정 초현실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AI가 우리의 머릿속 이미지를 그려낸 작품 모두 어떠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AI가 그려내지만 같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뜻으로, 알고 보면 의미 없는 ‘냉무’같은 작품이다. 이미지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낸 ‘기형의 그림’이다.
이는 오비어스가 파리 브레인 연구소(ICM)와 함께 개발한 ‘Mind-to-Image’ 기술이 무기다. MRI로 포착한 뇌파를 AI로 변환해 시각화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초현실주의가 추구했던 무의식의 자유로운 표현을 AI기술로 구현했다.
초현실주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1989~1904)가 세상 풍경과 초상을 손으로(붓질로) 기이하게 그려냈다면, 오비어스는 기계를 써서 초현실주의 그림을 내놓는 셈이다. 단순히 지시어로 AI가 그림을 그린 것과 다르다. “AI가 인간 뇌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인간이 생각한 이미지를 기계가 그려냈다”는 게 큰 차이다.
◆혁신적인 ‘Mind-to-Image’ 제작 과정
어디서 본듯한 풍경과 초상화 등으로 나온 그림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오비어스 작가 3명이 각각 돌아가면서 MRI에 들어간다.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를 상상하면 생체 신호를 기반으로 AI가 뇌 안을 들여다본 것처럼 그림을 그려낸다.
‘Mind-to-Image’ 기술은 MRI로 포착한 뇌파를 AI로 변환해 90% 이상의 정확도로 시각화한다. 기술의 핵심은 세 단계의 제작 과정에 있다.
첫 단계(‘복제 단계’)에서 작가가 MRI 기계 안에서 실제 초현실주의 이미지들을 관찰하며 뇌 활동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는 뇌가 시각적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두 번째 단계(‘탐색 단계’)에서는 이미지를 짧게 보고 기억하는 과정에서의 뇌 활동을 기록하여 기억과 시각적 이미지의 연결성을 파악한다. 이 과정은 창의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기억 작용을 활용한 것이다.
마지막 단계(‘공상과학 단계’)에서는 자동기술법으로 작성된 시적 텍스트를 읽고 그에 따른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릴 때의 뇌 활동을 기록한다. AI 알고리즘은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예술가의 순수한 상상을 실제 시각 작품으로 구현한다.
완성된 작품은 300g 특수 질감 용지에 지클레 프린팅과 4가지 블랙 딥 잉크를 활용한 이중 인쇄 방식으로 제작되며 GAN 모델의 손실 함수로 서명된다
마치 그린듯한 화면이지만 “리터칭(수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그림은 AI가 인간의 머릿속 이미지를 그린 오로지 딱 한 장 뿐인 ‘오리지널’이 특징이다. 물론 사진처럼 원본은 있지만 프린트 되어 나온 작품은 오비어스(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AI 창조물인 오리지널 아트’로 입증된다. 이후 오비어스가 의도적으로 액자 구성까지 맞추면 작품 완성이다.
◆프랑스 AI아트그룹 오비어스는?
피에르 포트렐, 위고 카셀레스-뒤프레, 고티에 베르니에로 3명은 모두 31세 동갑으로 어릴적 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아트씬이 아닌 기계공학 출신들로, 단순한 예술가 집단을 넘어 과학연구자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소르본 대학교와 프랑스 국립연구원(ANR)과의 협력을 통해 AI 예술의 새로운 경계를 탐구해 왔다.
2017년 뭉쳐 ‘AI 아트’ 장르를 개척한 이들이 주목 받은 건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다. AI 아트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43만 달러(한화 5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선화랑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지평: IMAGINE’
이번 전시는 오비어스의 ‘마인드 투 이미지(Mind-to-Image)’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는 자동기술법으로 쓰인 시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5점의 대형 풍경화 시리즈,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탐구하는 15점의 초상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관객 참여형 미디어 아트 공간도 마련, 실시간으로 시를 생성하는 AI 설치물과 관객의 아이디어를 즉석에서 그림으로 구현하는 ‘엑스퀴지트 코프스(Exquisite Corpse)’ 프로젝트를 체험할 수 있다.
선화랑 원혜경 대표는 “이번 전시 타이틀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지평: IMAGINE’ 은 인간의 무의식과 AI 기술의 혁신적 결합을 통한 예술 창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1924년 초현실주의운동을 주도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100주년을 기념하며 현대 기술로 초현실주의의 본질을 재해석한다는 기획 의도를 담았다.
아직은 손 맛이 우세한 그림 시장에서 ‘AI 아트’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한 오비어스는 “MRI안에서 상상한 결과물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우리는 아티스트만이 아닌 기술적인 정보를 위해 경쟁력 있는 리서처로도 활동, 대부분의 작업은 학계의 논문에 실시간으로 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르본 대학교, 프랑스 국립연구원(ANR)과 협력한 프로젝트는 2024년 ICML 학회에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전시 기간 중 홍익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와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가 함께하는 작가와의 대담회가 11일 홍익대학교에서 열린다.
한편 인사동 터줏대감 선화랑의 변신도 눈길을 끈다. ‘기계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이번 전시는 전통 보수적인 선화랑의 3세대 경영을 예고하고 있다. 오비어스의 전시는 1977년 선화랑을 창립한 김창실(1935~2011)의 손자이자 원혜경 대표 아들인 이준화(36)실장이 기획했다. 전시는 5월3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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