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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이 다시 읽은 ‘베르테르’…선율·몸짓으로 되살린 사랑 [객석에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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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 ‘베르테르’는 익숙한 비극을 오늘의 감정으로 다시 읽어낸 무대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파멸이라는 서사는 그대로 두되 연출과 음악, 몸짓의 언어를 더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을 새롭게 드러낸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감독 박종원의 첫 오페라 연출이다.

‘구로아리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연출한 그는 무대를 제한된 공간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마스네의 악보를 영화의 콘티처럼 읽어내며 장면의 전환, 시선의 이동, 인물 간 거리감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제한된 무대 공간은 음악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된다.

영화적 문법과 새로운 장치를 적극 끌어왔지만, 무대는 끝내 음악과 성악이라는 오페라의 본령을 놓치지 않는다. 박종원의 해석이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다.

원작에 없는 무용수의 활용은 이번 무대의 가장 인상적인 장치다. 베르테르와 샤를로트가 아리아로 내면을 노래한다면, 무용수는 그 감정을 육체의 언어로 시각화한다. 샤를로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현실 앞에서 베르테르가 무너지는 장면에서 절망과 울분은 몸짓으로 증폭된다. 욕망과 도덕, 이성 사이에서 충돌하는 인물의 혼란도 신체 움직임으로 또렷하게 전달된다.

무대 미술 역시 인물의 심리를 따라간다. 무대 위 보리수나무는 베르테르의 내면을 상징한다. 푸르게 돋아난 잎은 순수한 청년의 마음을 닮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잎이 떨어지고 앙상하게 변한다. 현실에 가로막혀 사랑이 소진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3막에 등장하는 편지 감정의 전환점을 선명하게 부각한다. 삶의 끝자락에 선 베르테르가 마지막으로 마음을 건네는 수단이자, 샤를로트가 뒤늦게 그의 사랑의 무게를 깨닫게 되는 매개가 된다.

베르테르 역 이범주의 가창과 연기도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사랑에 빠진 청년의 설렘에서 현실 앞에 무너지는 절망까지 감정의 폭을 안정적으로 그려냈다. 객석을 가득 채우는 선명한 고음은 인물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밀어 올린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돋보였다. 로베르토 아바도 취임 이후 강화된 극음악 해석이 무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섬세한 강약 조절과 유기적인 호흡은 작품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인물들의 불안정한 감정과 관계의 균열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했다.

다만 4막 초반 베르테르의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아리아를 이어가는 반복적 연출은 감정의 밀도를 분산시키는 인상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번 ‘베르테르’는 극을 낡은 서사로 머물게 두지 않는다. 박종원 감독은 선율과 몸짓, 상징의 언어를 통해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사랑을 놓지 못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무대 위로 다시 불러냈다.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xcuseme@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424_0003605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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