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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자 폭발한 관능…베자르 제단 위 타오른 김기민의 ‘볼레로’ [객석에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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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어둠 속에서 볼레로 선율이 흐르자 무용수 김기민이 손으로 반원을 그리며 붉은 원형 테이블 위에 올랐다.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하체는 탄력 있게 튕겨 오르고, 상체는 유연하게 흐른다. 절제된 몸짓은 오히려 더 짙은 관능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23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베자르 발레 로잔(BBL) with 김기민’ 프로그램 A의 피날레 ‘볼레로’에서 김기민은 주역 멜로디로 무대의 중심을 장악했다. 음악과 춤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로 맞물리며, 그는 자신만의 ‘멜로디’를 빚어냈다.

모리스 라벨의 동명 음악에 맞춰 만든 ‘볼레로’는 전설적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의 대표작이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선율과 리듬을 점층적으로 쌓아 올리며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수많은 세계적 무용수들이 거쳐 간 ‘꿈의 무대’로 통한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은 한국인 최초로 이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

공연 전 김기민은 “테이블 위에서 혼자 춤추지만 아래 무용수들이 각자의 철학과 이념을 갖고 있는 걸 봤다”며 “‘볼레로’ 마지막에 색을 칠하는 존재는 결국 멜로디이기에 아름답게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서 그는 그 다짐을 그대로 증명했다. 발끝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움직임은 부드러웠지만,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묵직했다. 힘을 과시하기보다 덜어낸 동작들이 오히려 더 큰 긴장감과 흡인력을 만들었다.

음악이 고조되자 무대 아래 남성 무용수들이 하나둘씩 합류했다. 김기민이 고고한 선율을 이끌면, 이들은 그 주위를 에워싸며 집요한 리듬이 됐다. 처음엔 나무 의자에 느슨하게 앉아 주역을 바라보던 무용수들까지 가세하자, 38명의 군무는 붉은 제단을 둘러싼 거대한 제의로 확장됐다.

줄리앙 파브로 BBL 예술감독의 설명처럼 제단 위 솔리스트는 결국 소진될 운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김기민의 춤은 비극이나 공포보다, 그 운명을 넘어서는 환희에 가까웠다. 뜨거운 제의이자 축제 같은 15분이었다.

마지막 순간 무용수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와 김기민과 함께 쓰러지고 음악이 멈추자 객석에서는 숨죽인 정적 뒤로 거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세 차례 넘는 커튼콜이 이어지는 동안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프로그램 A에서는 ‘볼레로’와 함께 셰익스피어 비극을 재해석한 아시아 초연작 ‘햄릿’,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맞춘 ‘불새’도 함께 올랐다.

특히 ‘햄릿’에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역을 맡은 솔렌 뷔렐은 농염한 연기와 뛰어난 표현력, 화려한 테크닉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공연 전 “무대가 끝날 때마다 심장에서 피가 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한다”고 말한 바 있다.

베자르가 재해석한 ‘불새’의 키워드는 ‘혁명’이다. 체 게바라와 베트남 반전운동, 중국 문화혁명과 프라하의 봄과 같은 시대정신을 담았다.

무용수들은 스트라빈스키 음악 위에서 날갯짓을 연상시키는 몸짓과 집단 에너지로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다만 1970년대 초연작인 만큼 시각적 연출과 의상에서는 다소 시대의 흔적도 엿보였다.

그럼에도 베자르 발레 로잔이 25년 만에 서울 무대에 펼쳐놓은 현대 발레의 정수, 그리고 그 중심에 선 김기민의 존재감은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베자르 발레 로잔 with 김기민’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진행되며, 김기민의 ‘볼레로’ 무대는 25일 한 차례 더 만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424_000360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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